이원영 중앙대 명예교수·유아교육학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리 사립 유치원 명단'을 발표한 후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유치원 원장이 나랏돈으로 딴 짓을 했다니 학부모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소중하고, 유치원에 거는 기대가 커서일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외치고 싶은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많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반성이 필요할 때다.

2012년부터 정부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아이들에게 '누리 과정'이라는 국가 공통 교육과정을 도입해 가르치고 있다. 학부모들에겐 누리 과정 지원금을 바우처 카드로 지급하고 있다. 학부모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중 어느 곳에 다닐지 결정한 뒤 국가가 지급한 바우처 카드를 낸다.

교육청은 바우처 카드를 통해 아이가 해당 기관에 다니는 것을 확인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누리 과정 교육비를 지급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누리 과정이 만 3~4세까지 확대되어 사교육 기관에 다니던 많은 아이가 정규 유아 교육 기관인 유치원으로 오게 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만 3~5세 취원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위가 될 정도로 높아졌다.

누리 과정이 도입되면서부터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경쟁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려 안간힘을 썼다. 학부모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누리 과정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기관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육의 질(質)은 올라간 반면 재정 관리 수준은 그에 못 미친 것이 사실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재무 회계를 해오던 유치원들이 체계적으로 재무 회계 규칙과 예산·결산 관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누리 과정이 도입되면서부터다. 전국 시·도의회에서 유치원 재무 회계 규칙 시행령을 통과해 실시한 게 작년 9월이니 사립 유치원들이 정색하고 재무를 배운 것이 1년밖에 안 된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교육청 감사 결과에 단순 행정 착오나 절차 위반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은 그런 미숙함 때문이다.

허툰 데 돈을 쓰지 않고 교사 봉급을 정직하게 지급한 유치원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도 예산·결산 관리에 서툴고 부실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국민 세금을 치밀하고 투명하게 써야 한다는 절실함과 책임감이 부족했다는 점도 인정하고 더욱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게 개선하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 드리는 것이 옳다.

사립 유치원 논란이 지속되자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 지원금을 유용한 사립 유치원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고, 여당은 "횡령죄로 엄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도 모든 책임을 유치원에 떠넘겨선 안 된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나라 유아 교육을 민간에 맡겨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게 방치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치원들이 투명하게 재정을 운용하도록 시스템을 도입하고 감사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른 원장은 법에 따라 다스리고 부정 사용한 세금을 환불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헌신적으로 유아 교육에 힘써온 원장들은 앞으로 더 잘하라고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일부 유치원들 때문에 모든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비리 척결 대상으로 비쳐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피해 입는 대상은 행복하게 유치원에 다녀야 할 우리 아이들이다.

우리나라 유치원 교육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배우러 올 정도로 수준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지난 100여년 동안 유아 교육의 노하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유아기는 정서적 안정감, 긍정적인 사회관계 기술을 배우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현재 만 3~5세 유아의 70%를 교육하고 있는 사립 유치원들이 힘을 잃지 않고 아이들 행복을 위해 더욱 잘 교육할 수 있도록 정부, 학부모, 유치원 모두 다 같이 머리를 맞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