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흑인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11일(현지 시각)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흑인 문제를 논의한다는 백악관의 계획이 무색하게 트럼프 대통령이 웨스트의 ‘속사포’ 발언만 듣다 끝난 ‘기괴한’ 회동이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날 오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을 처음으로 방문한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오찬 전 이뤄진 10분간의 회동에서 웨스트는 자리에 앉자마자 비속어를 섞어가며 쉼 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5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입을 떼지도 못한 채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웨스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는 웨스트의 모든 말을 그저 덥석덥석 받아들일 뿐이었다"고 전했다.

2018년 10월 1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웨스트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만히 듣고만 있는 모습.

당초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웨스트가 교도소 개혁과 흑인 일자리 창출, 시카고 내 흑인 범죄 등 ‘흑인 문제’에 집중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10분 동안 나눈 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비행기, 웨스트가 진단받은 조울증, 여성이 지배하는 결혼 생활 등 흑인 문제와는 관련 없는 주제에 한정됐다.

대화 중간 웨스트는 작심한 듯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며 흑인인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은 흑인이라면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생각이 바로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웨스트는 "트럼프는 ‘영웅의 여정’을 밟아가고 있다"며 "그가 나쁘게 보이면, 우리(국민)도 나쁘게 보이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난 MAGA 모자를 쓸 용기가 있었다. 이 모자는 나를 마치 슈퍼맨처럼 느끼게 한다"며 "트럼프는 나 같은 씨XX이 자신을 지지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2018년 10월 1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포옹하고 있다.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범죄와 폭력을 엄중 단속하기 위해 시카고 경찰에게 ‘정지(停止) 신체검사권’을 허용하는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도 전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당신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난 모든 것에 열려있다"고 여지를 두며, "경찰의 잔혹함에 대한 해결책은 사랑"이라는 엉뚱한 답을 내놨다.

이외에도 웨스트는 "시카고에 트럼프 공장과 자신의 브랜드 개발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학교는 지루하다. 아이들은 수학 문제를 풀 시간에 농구를 해야 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를 걱정 마라. 우리에겐 오늘만 있을 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속사포 발언을 쏟아냈다.

2018년 10월 1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회동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

회동 끝 무렵 웨스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가가 "이 사람(트럼프)을 사랑한다"며 포옹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며 "웨스트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화답했다. 곧이어 이들은 집무실을 떠나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함께 비공개 오찬을 했다.

CNN은 "오찬은 촬영이 허가되지 않았지만, 식사 전 10분간 웨스트가 뱉어낸 ‘독백’을 통해 식사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엿볼 수 있다"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기괴한’ 대통령 집무실 대화는 유명인사를 향한 트럼프의 공개적인 숭배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자신이 흑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웨스트의 입을 통해 전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면서 "웨스트가 트럼프에게 쏟아낸 말에서는 흑인을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