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 무궁화꽃이 만발했다. 행정구역상 주소가 서울 종로구 궁정동인 무궁화동산은 옛 중앙정보부 안전 가옥 터였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면서 시민 공원으로 조성됐다. 공원 중앙에 태극 무늬로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심고 무궁화동산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그간 무궁화보다는 전국에서 공수한 각종 야생화나 소나무, 느티나무처럼 다른 수종 위주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곳을 찾은 이들은 무궁화, 그것도 익숙한 분홍색뿐만 아니라 형형색색 무궁화를 볼 수 있었다. 청와대 앞이 관광객 단골 코스 중 하나라서 바로 옆에 있는 무궁화동산도 자연스럽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소문이 났다. 덕분에 지난 9월 산림청이 주관한 '나라꽃 무궁화 명소 선정' 행사에서 최우수 무궁화 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궁화동산이 이름값을 되찾게 된 건 두산그룹 덕분이다. 두산은 지난 4월 무궁화동산 관리 주체인 종로구청과 협약을 맺고, 이 동산에 무궁화 14종 3000여 주를 심고 3년간 무상으로 관리해 주기로 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지만, 사실 관리가 쉽지 않은 종이라서 생각보다 잘 보급되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우리 역시 회사 차원에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 3년간 무궁화 관리 노하우를 축적했고 그걸 집약한 곳이 궁정동 무궁화동산"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도 3년이란 시간을 들인 이유는 무궁화가 그만큼 번식과 관리가 까다로운 종이기 때문이다. 무궁화를 꽃피우려면 단순히 땅에 씨앗을 심어서는 어렵다. 무궁화가 자연스럽게 잘 퍼지지 않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1년생 가지를 땅이나 배양액에 심어 뿌리가 나게 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또한 무궁화는 일반적 꽃나무와 달리 비료를 써야 꽃이 잘 핀다. 묘목을 심을 때는 물론, 꽃이 필 때까지 총 3번에 걸쳐 고형 비료와 복합 비료 등을 쓴다. 가장 중요한 건 가지치기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무궁화 수천만 그루를 심는 사업을 벌였음에도 주위에서 무궁화를 잘 보기 어려운 것이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무궁화는 벚꽃이나 개나리와 달리 한번 꽃이 핀 묵은 가지에서 꽃이 잘 피지 않는다. 무궁화나무를 한번 심으면 첫해에 꽃이 활짝 피다가 다음 해부터 급격히 꽃이 줄어드는 것도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은 탓이 크다.
두산은 궁정동 무궁화동산 외에 강원도 홍천의 남궁억기념관에도 무궁화정원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인 한서 남궁억(1863~1939) 선생은 1919년 고향인 홍천에 학교를 설립한 뒤 전국에 무궁화 보급 운동을 벌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사회 공헌 사업 차원에서 전국 각지에 무궁화 정원을 계속 만들 계획"이라며 "내년 중에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무궁화 정원을 개장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