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계절' 10월에 들이닥친 태풍
70억원 들인 여의도 불꽃축제 '강행이냐 아니냐' 고심
직접 영향권 남부지방 '철수', 간접 영향권 중부지방 '눈치'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한반도 쪽으로 북진하면서 이번 주말 예정됐던 가을축제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가을 축제 대부분은 청명한 날씨 아래 열리는 노상(路上) 축제가 대부분인 까닭이다.
태풍의 직접 영향권인 제주도·남부지방 축제들은 일제히 취소결정이 나왔다. ‘간접 영향권’에 드는 수도권은 오히려 골치가 아프다. 콩레이가 부산에 상륙한 뒤 동해안으로 빠진다는 예측이 나와 ‘최후의 최후’까지 태풍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축제가 열리는 주말 오전에 ‘강행이냐 아니냐’ 문제가 결정되는 축제도 있다. 2000년 시작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대표적이다. 이날 만난 서울세계불꽃축제 관계자는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일년 간 준비했던 축제라 취소 결정을 쉽사리 낼 수가 없다"며 "지금으로선 하늘에 제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콩레이 나비효과…초속 10m 바람 불면 불꽃축제 개최 불투명
해마다 120만명 관람객이 몰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 여의도 현장은 비가 내리는 이날 오전에도 준비가 한창이었다. 여의도 한강 공원 한쪽에는 500여개 플라스틱 의자가 비에 젖은 채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현장 관계자들의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비는 흩뿌리는 수준이었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강풍 속에서 6m 높이의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축제가 오는 6일부터 열린다면 이 시설물 위에는 방송 카메라가 올라갈 예정이다.
"비바람이 세게 불어도 스피커가 넘어지지 않게 끈으로 고정하고 있습니다. 축제를 할지 안 할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일단 준비하고 있어요. (시설물이)튼튼하기는 한데, 내일 바람이 어떻게 불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중(雨中)에서 뻘뻘 땀 흘리던 현장 관계자 얘기다.
2000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축제다. 한화그룹이 한해 행사에 투입하는 비용만 70억원에 이른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2001년 911테러, 2006년 북핵위기, 2009년 신종플루 때문에 취소된 적이 있다. 그러나 날씨 때문에 취소된 적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다. 한화 측은 축제 당일 오전까지 기상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한 뒤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기술적으로는, 화약이 젖을 정도가 아닌 비라면 불꽃을 쏘아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바람이다. 불꽃 파편이 예상반경(여의도 선착장에서 400m 이내)을 벗어나서 튈 경우가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다. 관람객들은 63빌딩 근처 여의도공원, 이촌동 한강지구, 노량진 수산시장 위 옥상, 심지어 차가 달리는 도로 등 ‘무료 명당(明堂)’에서 관람을 하기 때문에 통제도 어렵다.
불꽃축제 당일인 오는 6일 서울에는 초속 5~9m 속도의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화는 축제 당일에 초속 10m 이상의 바람이 불면 행사를 취소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불꽃놀이에서 폭죽이 점화됐을 때, 순간적으로 섭씨 1093도의 열을 발산한다"며 "이런 폭죽 파편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튄다면 화상의 위험뿐만 아니라 화재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부지방 일제히 철수, 중부지방 각자도생
태풍이 직접 타격할 것으로 보이는 제주도·남부지방은 일찌감치 장(場)을 접었다. 특히 부산은 태풍 콩레이가 상륙할 것으로 예보됐다. 아시아 최대영화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10월 4~13일)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행사를 모두 실내로 돌렸다. 야외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태풍이 지나가는 오는 12일까지 상영이 모두 보류하기로 했다.
‘가왕’ 조용필 전국 콘서트 투어도 태풍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오는 6일에 전남 여수시에서 열릴 예정이던 조용필 콘서트가 취소됐다. 공연비는 전액 환불될 예정이다. 경남 남해군에서 오는 6~8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던 ‘독일마을 맥주축제’도 전면 취소됐다.
태풍 간접 영향권인 서울에서는 축제 성격에 따라 ‘각자도생’하는 분위기다. 야외에서 공연하는 서울거리예술축제는 야외공연이 취소됐다. 예술단원 42명이 공중에서 ‘인간 그물’을 만들어 보이는 일부 공연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 때문이다. 실내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DMC 크래프트 비어 페스티벌(10월 4~6일)’ 현장인 서울 마포구 상암문화광장 현장은 이날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공연이 예정된 야외 특설무대 위에는 비가 고였고, 야외 테이블도 젖어 있었다. 행사장 주변을 지나던 중국인 관광객에게 "맥주 축제 오실 거냐"고 물으니, "이 날씨로 무슨 맥주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축제 주최 측은 맥주 판매는 그대로 하되 야외공연을 취소하기로 이날 결정했다.
오는 6일 오후 7시 삼성동 코엑스 앞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2018 강남페스티벌 영동대로 K-POP 콘서트'는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행사에는 EXO-CBX, 워너원, 레드벨벳 등 국내 최정상 아이돌 그룹이 총출동한다. 행사 관계자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다면 안전에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계속 일기예보를 살피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