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숭배 미화 지적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농촌에 있을 때 지식에 매우 목말라했다. 책 한권을 빌리기 위해 15킬로미터의 산길을 기꺼이 걸었다. 그때 빌린 책은 무엇일까요."

중국 건국 69주년 국경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후난(湖南)TV가 황금시간대(19:30~20:10)에 내보낸 퀴즈쇼 ‘신시대 학습(學習)대회’에서 나온 질문이다. 후난대 학생은 1초도 안돼 버튼을 누른 뒤 "괴테의 파우스트"란 정답을 맞췄다. 학습을 중국에서는 시(習)를 배운다(學)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중국이 시진핑 사상을 학습하기 위한 퀴즈쇼를 후난 TV를 통해 4일까지 매일 황금시간대에 방영중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등이 3일 보도했다. 5회 분량으로 구성된 신시대 학습대회는 후난성 선전부와 후난 TV 인민망 중국교육TV 등이 제작한 ‘사회주의는 최신 유행’이란 프로그램의 시즌2에 해당된다. 시즌 1은 토크쇼로 시 주석의 1인 권력체제를 강화한 지난해 10월 19차 당대회 직전에 방영됐다.

후난 TV가 지난달 30일부터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 시진핑 사상 학습 퀴즈쇼

신시대 학습대회 1회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어디서 왔는가’란 제목으로. 2회는 ‘시진핑 사상의 새로운 점은 어디에 있나’, 3회는 ‘시진핑 사상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3일 방영되는 4회는 ‘시진핑 사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려준다’, 마지막 5회는 ‘시진핑 사상은 우리를 어디로 가게 하나’ 등이 주제다.

시진핑 사상 퀴즈쇼를 첫 방영한 후난 TV는 중국에서 예능프로그램과 아이돌이 나오는 드라마로 중국에서 2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방송국이다. 질문은 로봇이 던지는데 가슴에 오성홍기와 함께 205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시 주석이 현대 강국 목표를 정한 2050년을 상징한다. 관영매체들은 2050년 부흥한 중국에서 시간여행을 타고 날아온 로봇이라고 소개했다.

시진핑 사상 학습 퀴즈쇼에서 질문을 던지는 로봇. 가슴에 2050이란 숫자가 새겨져있다. 시진핑이 중국을 현대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2050년을 상징한다.

SCMP가 정통 사회주의 교육보다 외국의 팝문화에 더 영향을 받으며 자란 젊은 세대(밀레니얼)의 마음을 잡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분석한 배경이다.

중국의 기업 농촌 정부 군대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온 100여명의 젊은이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한 스튜디오에 미래 스타일의 복장을 하고 등장한 사회자는 시진핑 사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프로그램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해 19차 당대회에서 공산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장(黨章·당헌)에 시진핑 사상이 삽입됐다. 이전에 중국에서 자신이 이름을 딴 사상을 현직에서 당장에 넣은 지도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유일했다. 시진핑 사상은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서 개정한 헌법에도 들어갔다. 이번 개헌에선 시 주석이 2023년까지의 임기를 넘어 종신집권할 수 있게 국가주석 임기제를 폐지했다.

시진핑 1인 권력체제 강화로 이미 최소 10여개 대학이 시진핑 사상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연구기관을 세웠다고 SCMP가 전했다. 하지만 시진핑 사상을 젊은층에 보급하는게 더디다고 본 시 주석은 지난 8월 고위급 회의에서 신시대 사상을 일반 대중에 제대로 이해시키고 일반 가정에까지 흘러갈 수 있는 창의적인 방식을 찾으라고 지시했다.시진핑 사상 퀴즈쇼는 이같은 주문에 대한 답이라고 SCMP는 전했다.

후난TV가 방영중인 시진핑 사상 학습 퀴즈쇼는 젊은층을 겨냥해 우주선 내부를 연상케 하는 구조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진핑 사상 퀴즈쇼는 시 주석 이미지를 미화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시 주석이 16세밖에 안됐을 때 베이징에서 샨시(陝西)성의 량자허(梁家河)로 가 농민이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개인숭배를 금지한다고 공언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은 앞서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올 5월 관영 CCTV를 통해 마르크스를 바로 잡자라는 토크쇼를 방영했다. SCMP는 시진핑 사상 전파에 열심인 중국 당국이 젊은이들에게 주입하기를 원하는 정통 사회주의 가치에 반하는 콘텐츠를 저질로 보고 강하게 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