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 임종기 옮김 | 에이도스 | 420쪽 | 2만6000원
"현대 문명사회에서 사회계급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모호하고 일시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학계의 이단아, 냉소적 이방인, 현대 사회 과학계의 유일한 풍자 작가…. 소스타인 베블런에 따라붙는 꼬리표다. 생산력과 노동에 주목하던 당시 정통경제학과 달리 ‘소비’와 ‘사치’의 문제에 주목한 베블런은 1899년 대표작 ‘유한계급론’을 통해, 과시적 소비와 차별화 등 핵심 개념을 내놓았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듯한 그의 통찰은 20세기 중후반의 소비자본주의와 문화적 계급 분석의 사상적 수원지가 되었으며, 훗날 ‘소비의 사회’(1970)를 쓴 장 보드리야르와 ‘구별짓기’(1979)를 쓴 피에르 부르디외에 영향을 끼쳤다.
베블런은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이른바 상류계급이라고 하는 유한계급이 왜 야만적인 약탈 본능을 숨기지 않는지, 먹고 살기에 급급한 하층계급은 왜 상류계급의 문화를 따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보수주의로 흘러가는지,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은 왜 초라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는지를 통찰했다.
현대사회의 경쟁 체제는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기적 인간들을 양산한다. 따라서 계급 간의 경계선도 모호하고 일시적인 것이 된다. 베블런은 "타인의 일상생활에 무감각한 관찰자들에게 자신의 재력을 인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불 능력을 끊임없이 과시하며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100년의 지난 지금, 현대인들이 SNS에 자신의 재력과 소비를 과시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도 들어맞는다.
베블런은 마르크스처럼 사회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유한계급의 가치와 생활양식이 하층계급에까지 물 흐르듯 흘러내리는지를 분석했다. "사회의 각 계층은 자신보다 위에 있는 계층에서 유행하는 생활양식을 품위 있고 이상적인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살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다. 이렇게 상류계급의 명성의 규범은 사회구조 전반에 걸쳐 큰 저항 없이 최하층까지 영향력을 확장한다."
베블런의 이론이 ‘사회의 안정화’에 대한 이론이라고 말하는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하층계급은 상류계급에 칼을 겨누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정치적 보수주의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에 거의 같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유한계급은 생존 경쟁이라는 틀에서 볼 때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류계급은? 일상적인 생존투쟁에 에너지를 모조리 쏟는 사람들은 누구나 힘들여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역시 보수적이다.
베블런의 이야기는 100년이 훌쩍 지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도 들어맞는 예언적 통찰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