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전력분석은 한국프로야구와 비교해 얼마나 발달되어 있을까. 한국 KBO리그에서 슈퍼스타로 발돋움해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류현진(31·다저스)과 오승환(36·콜로라도)을 통해 그 차이점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 빅데이터 활용해 ‘천적’ 아레나도 잡아낸 류현진

류현진은 지난 9월 1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선발로 나와 7이닝 4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류현진은 시즌 5승을 수확했다.

류현진은 그간 부진했던 콜로라도를 상대로 지구 우승이 걸린 시리즈에서 승리하며 기쁨이 두 배로 컸다. 콜로라도에 약했던 징크스도 떨쳤다. 류현진은 2014년 6월 17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전에서 6이닝 3피안타(1피홈런) 6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이후 다시 콜로라도를 잡기까지 무려 1554일이 걸렸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이 만든 승리였다. 류현진의 관건은 통산 타율 6할2푼5리인 ‘천적’ 놀란 아레나도를 어떻게 잡을 지였다. 류현진은 다저스의 데이터베이스 전력분석 시스템을 십분 활용했다. 류현진은 그 동안 아레나도와 상대했던 영상을 뽑아서 모두 분석했다. 그 결과 아레나도에게 결정구로 주로 체인지업을 던져서 안타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두 번 실수는 없었다. 류현진은 아레나도를 상대로 투구패턴과 코스도 달리해서 던졌다. 그립을 달리한 ‘신종커터’를 결정구로 승부수를 걸었다. 아레나도는 첫 타석에서 류현진의 커터를 빗맞춰 행운의 안타를 치고 나갔다. 류현진은 “저 선수는 빗맞아도 안타를 치는구나!”라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아레나도도 류현진의 신무기를 한 번 보고 제대로 맞추기는 어려웠다. 이후 류현진은 중요한 순간마다 아레나도를 뜬공과 땅볼로 처리했다. 류현진은 당당하게 7이닝 무실점 무사사구를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경기 후 류현진은 “며칠 전부터 아레나도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나왔다. 그 전의 영상을 모조리 찾아봤다. 체인지업을 던져서 주로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커터를 던졌다”고 고백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를 영상으로 저장한 빅데이터 시스템이 있다. 덕아웃 뒤에 있는 분석실에서 선수들이 언제든 원하는 플레이를 보고 분석할 수 있다. 류현진도 데이터분석을 십분 활용해 아레나도를 잡았다.

류현진은 “요즘 한국도 전력분석이 많이 발전했다고 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에 따라, 구종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 영상을 즉각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아레나도의 바로 전 타석까지 경기 중에 바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경기 중에도 컴퓨터로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릭 허니컷 투수코치는 경기를 앞두고 류현진과 투수미팅을 갖는다. 여기서 상대팀에 대한 전력분석과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류현진은 메모장에 특이사항을 적어놓고 계속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류현진은 “메모는 별 것 아니다. 한국에서 하던 것과 비슷하다. 내가 잘 안 되는 것과 꼭 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메모장에 써서 계속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재적인 재능에 의존해 경기를 푼다고 알려진 류현진이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달콤한 승리의 내면에는 최신 데이터를 활용한 노력이 숨어있었다.

▲ 불펜에서 몸 풀면서 전력분석도 하는 오승환

선발투수 류현진과 구원투수 오승환은 전력을 분석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었다. 류현진은 상대 예상 타순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놀란 아레나도처럼 특별히 자신에게 강한 타자가 있으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는 편이다. 반면 주로 7~8회에 등판하는 오승환은 언제 어떤 타자와 상대할지 예상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두 선수는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도 달랐다.

오승환은 한국프로야구 삼성과 일본프로야구 한신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빅리그 첫 2시즌을 세인트루이스에서 보낸 오승환은 올 시즌을 앞두고 토론토로 이적했다. 시즌 중 오승환은 콜로라도로 트레이드돼 새로운 유니폼을 입었다. 다저스에서만 뛴 류현진과 달라 오승환은 여러 팀의 문화를 두루 경험했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의 전력분석도 각 팀마다 전부 다르다. ‘메이저리그는 이렇다’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 데이터 전력분석에 대한 선수들의 의견도 다르다. 어떤 선수는 숫자를 신뢰하는 한편, 아예 안 보는 선수도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다저스가 보유한 빅데이터 영상분석 시스템은 콜로라도를 비롯한 다른 팀들도 보유하고 있다. 오승환은 “경기 중 수시로 분석실에 가서 영상을 본다. 삼성 시절에도 원하는 전력분석 영상을 봤다. 다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실시간으로 영상이 업데이트가 돼 바로 볼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원투수인 오승환은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 앞으로 어떤 타자를 상대할지 전력분석도 겸한다. 오승환은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 불펜코치가 ‘앞으로 어떤 선수와 붙게 된다’고 알려주면서 그 선수에 대한 전력분석도 제공한다. 상대편에 대한 전력분석을 하고 들어가지만, 참고만 하는 편이다. 보통 상대팀의 일주일치 영상을 보고 들어간다. 안타를 친 공과 삼진을 잡은 공, 땅볼을 친 공의 구질이 무엇이었는지, 클린업 타자들이 어떤 공을 쳤는지 본다. 불펜에서 워밍업을 하면 불펜코치가 지시를 한다”고 밝혔다.

오승환은 9월 20일 다저스와 3연전 마지막 경기서 2-5로 뒤진 8회말 등판해 ⅔이닝을 0피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오승환은 다저스 중심타자 저스틴 터너와 매니 마차도를 2연속 땅볼로 처리했다. 오승환은 좌타자 코디 벨린저와 승부를 앞두고 교체됐다. 버드 블랙 감독이 우완투수인 오승환이 좌타자 벨린저를 상대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또한 전력분석의 결과물이었다.

경기 후 오승환은 “터너와 마차도에게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낮게 제구가 되면서 땅볼로 잡을 수 있었다. 교체는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다. 좌타자가 나오면서 교체를 하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투수는 상대가 좌타자든 우타자든 상관없이 자신 있게 경기를 준비한다. 하지만 감독들은 선수의 의사와 상관없이 데이터에 입각해 더 확률이 높은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다는 증거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로스앤젤레스(미국)=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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