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관광의 성지(聖地)' 전남 여수 종화동 종포해양공원 인접 보행로는 밤이면 포차 거리로 변신한다. 130m 길이 인도에 이동식 포차 18개가 빼곡하게 늘어선다. 여수의 명소 '낭만포차' 거리다. 지난 11일 오후 7시 빨간 지붕 포차들이 불을 밝혔다. 2016년 5월 개장해 3년째를 맞은 '낭만포차 3기(내년 9월 10일까지)'의 영업 개시일이다. 산책 관광객과 시민이 삼삼오오 포차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영업이 끝난 새벽 2시 모든 포차는 1㎞ 떨어진 보관소로 옮겨졌다. 인도와 도로는 원래대로 말끔해졌다.
낭만포차 거리는 불과 2년여 만에 여수의 대표적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여수의 관광객은 1508만명으로 전국 시·군 1위였다. 지난해 해양공원의 밤바다 관광객은 680만명이었다. 낭만포차가 이들의 발길을 잡아당겼다. 한 50대 상인은 "작년 포차당 관광객 3만명씩은 담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매출은 상당하다. 여수시가 카드 결제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포차 한 곳의 연간 최대 매출은 6억원이었다. 하지만 다른 50대 상인은 "유명세를 치른 포차는 연간 최대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낭만포차로 주변이 '뜨는 상권'이 되자 길이 1㎞ 왕복 4차로 도로변에 상가가 24곳이나 생겼다. 일대는 낭만포차 개장 전만 해도 밤이면 인적이 끊기는 쇠락한 원도심이었다. 낭만포차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5층 상가 2개 동, 펜션 2곳, 각종 음식점, 카페 건물이 들어섰다.
하지만 해양공원의 '낭만'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7월 취임한 권오봉 여수시장이 낭만포차 이전을 강하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낭만포차 거리 조성은 주철현 전 시장의 역점 사업이었다. 관광객 유입의 일등공신인 낭만포차 거리의 존치와 이전을 두고 여론은 둘로 맞서고 있다.
주로 낭만포차 인근 중앙동과 종화동 주민들이 이전을 찬성한다. 소음·쓰레기·교통난 등이 이유다. 주민 박모(56)씨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무선 마이크로 노래 부르는 소음에 잠을 못 이루고, 취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며 "일부 상인만 떼돈을 번다. 술판으로 변한 해양공원을 조용한 산책 공간으로 다시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존치를 주장하는 쪽은 어렵게 키운 지역 명소를 사실상 사장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낭만포차는 모두 일반음식점으로 여수시에서 영업 허가를 내줬다. 종합소득세, 포차 보관료, 도로 점용료, 지역 기부금을 낸다. 지난해 매출 상위권을 달성한 한 50대 상인은 "주변 동네에 2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말했다.
품질 관리를 위해 포차 운영자도 매우 까다롭게 뽑는다. 1차 서류 전형, 2차 음식 품평회를 거쳐야 한다. 여수 시민만 가능하다. 이번 3기 운영자 18명 공개 모집에 187명이 응시해 경쟁률이 10대1에 달했다. 서류 전형에선 메뉴의 참신성, 판매가의 적정성, 음식 재료 수급 방법, 관광객 대상 여수 홍보 방안, 여수 거주 기간, 주민등록상 가족 수 등을 일일이 따진다. 2기 포차 상인 18명 중 4명만이 3기 운영자로 뽑혔다. 기존 상인 14명이 고배를 마신 것이다.
주변 상인들도 이전에 반대한다. 낭만포차 거리 맞은편 상가(66㎡)를 지난해 11월 얻어 치킨집을 연 김모(51)씨는 "임차료가 월 220만원이지만 포차 관광객 덕에 버틴다"며 "오로지 낭만포차를 보고 여기에 왔는데 우리보고 죽으라는 얘기냐"고 말했다. 김태식(64) 낭만포차 거리 상가번영회장은 "관광의 도시에 관광객이 많이 오는 걸 탓할 수는 없다"며 "주민과 상생하는 해결책을 시에서 찾아 달라"고 말했다.
최근 여수시의회도 이전 반대 쪽에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29일 여수시의회는 내년 초 예정된 낭만포차 이전 관련 사업비 5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손하진 여수시 도시재생지원팀장은 "조만간 시민 여론조사와 공청회 과정을 충분히 거치겠다"며 "이전 대상지는 여론조사로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