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2학기부터 서울의 중·고등학생들이 학교만 허용하면 염색과 파마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도 대부분 학교에서 머리 길이를 제한하지 않고 있는데, 교육 당국이 한발 더 나아가 염색과 파마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서다.
조희연〈사진〉 서울시교육감은 27일 "두발 자유화는 자기 결정권에 해당하는 기본적 권리"라며 '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을 발표했다. "각 학교가 내년 상반기까지 구성원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주길 바란다"고 했다.
교육 현장에선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머리 스타일 정도는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게 해도 인성이나 학력에 아무 마이너스가 없다"고 한다. 김용서 영동중 생활지도부장은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염색·파마를 원한다"며 "허용할 건 허용하는 게 낫다"고 했다.
반면 "학교마다 교풍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할 일인데, 교육감이 개인 신념을 앞세워 밀어붙인다"는 지적도 있다. "자율적으로 '자유화'하라"고 타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얘기다.
현행법상 용모에 대한 규정은 '학교장 자율'이지만, 조 교육감이 추진하면 공립고 대부분이 '염색·파마 자유화'로 갈 가능성이 크다. 교육감이 공립고 교장의 인사권을 쥐고 있어서다.
◇조희연 교육감 "염색·파마 자유화해야"
이날 나온 '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은 2012년 곽노현 전 교육감이 도입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이 조례는 '학교가 학생 의사에 반해 용모를 규제해선 안 된다'고 선언했다. 법적 강제력은 없었지만, 일선 학교 대부분이 따라갔다.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 "독재국가도 아닌데 '남학생은 스포츠형, 여학생은 귀밑 ○㎝' 같은 식으로 머리 길이까지 단속하는 건 과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에 따라 서울 시내 중·고교 열 곳 중 여덟 곳이 두발 길이 단속을 없앴다(84%·2018년 기준). 그래도 염색과 파마는 대부분 학칙으로 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의 사립 A여고는 학칙에 '머리 길이는 제한하지 않지만, 염색이나 파마는 절대 불허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같은 지역 사립 남학교인 B고는 염색·파마뿐 아니라 '무스·스프레이·젤 사용도 금지'라고 못 박고 있다. 한편 일부 혁신학교에선 염색·파마에 아무 제한이 없다.
◇교육 현장 "강제 자유화"
조희연 교육감은 이날 "개인적으로는 자유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학교마다 충분히 토론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교육 현장에선 난감해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학교에선 교육감 선언을 사실상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개별 학교가 수년간 의견을 수렴해서 만든 학칙을 교육감이 일방적으로 무력화시킨다"고 했다.
◇부모의 고민, 학생의 목소리
학부모는 걱정하는 쪽 목소리가 높다. 중1 딸을 둔 김모씨는 "한창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애들에게 두발 자유화는 감당 못 할 수준"이라며 "학교에서 허용하면 내 아이만 못 하게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반면 고교생 김모양은 "외모는 개성 표현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학생 개인이 지는 것"이라며 "무작정 못하게 하면 반발심만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 고교 교사는 "아이들이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원하니까 무조건 풀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교육은 자제심을 가르칠 의무도 있는데, 무조건 허용과 자유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