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미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종전(終戰) 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설령 (대북) 제재를 완화해도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종전 선언을 해도 "미국으로선 손해 보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전날 한·미 정상회담과 이날 미 외교협회 연설에서도 종전 선언을 강조했다. 북이 원하는 대로 종전 선언을 '빠른 시일 내' 해주면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전 선언이나 대북 제재는 언제든 취소하거나 다시 강화하면 그만인 사안이 아니다. 신임 주한 미 대사는 지난달 부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종전 선언은 한번 선언하면 (새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종전 선언 조건으로 '핵 신고서 제출'을 거론했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수반되지 않는 '정치 쇼' 성격의 종전 선언은 안 된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문 대통령은 미국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代辯)하다시피 하면서 종전 선언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핵 신고서 제출 같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설득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대북 제재도 마찬가지다. 북 기만술에 속아 다국적 기업 투자가 시작되고 석탄·석유 등 금수품 교역이 재개되면 지금 수준의 제재망은 다시 구축하기 어렵다. 이미 중·러는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종전 선언은 '6·25가 끝났다'는 한 줄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선언 내용에 따라 한반도 안보 지형과 비핵화 로드맵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 대통령은‘유엔사(司)나 주한미군 지위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고 했지만 북이 종전 선언문을 근거로 비핵화는 질질 끌면서 '전쟁이 끝났으니 NLL도 없애라'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대북 협상의 역사가 그랬다. 종전 선언이 '단순 정치 선언'이고 '언제든 취소 가능'이라면 북이 왜 이렇게 집착하겠나. 정부는 구상하는 종전 선언 개요를 국민에게 먼저 밝히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종전 선언이 '아니면 말고'식이 돼선 안 된다. 북에 단 한 발의 핵무기도 남기지 않는 진짜 비핵화로 가야 하고 그렇게 해서 결단하는 종전 선언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해보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것은 쇼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 북이 종전 선언 대가로 내놓겠다는 핵·미사일 실험장 폐쇄는 실질적 비핵화와는 거리가 멀다. 북은 이미 수십 개의 핵무기를 숨겨 놨고 고정 발사대가 필요 없는 이동식(移動式) 탄도미사일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파키스탄처럼 시간을 끌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 종전 선언을 하려면‘정치 쇼’가 아니라 실제 북핵을 폐기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제대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