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이민경 디자이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그 산하 기관을 관할한다. 과방위는 과기정통부 산하의 60여 곳에 이르는 국책 과학기술 연구소·기관부터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미디어 산업을 총괄하는 방통위, 한국 전력공급의 중추인 원자력 에너지를 다루는 원안위까지 지휘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20대 국회 전반기 과방위의 안건 처리율은 17%에 불과해 대표적인 ‘식물 상임위’라는 오명을 들었다. 방통위 유관기관인 KBS·MBC의 지배구조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보이콧과 고성 다툼이 오가는 가운데 다른 안건 심사들도 지체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과방위의 법안소위를 과학·기술·원자력소위와 방송·통신소위로 분리하기도 했다.

20대 후반기 과방위에서는 법안소위 분리와 함께 본격적인 미래 먹거리 준비가 진행되리라 기대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논란이 됐던 방송 관련 현안들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뜨거운 감자’ 방송 이슈…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통합방송법 두고 ‘격돌’

과방위의 최대 격전지는 방통위 소관의 방송 이슈, 그중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이다. 현행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 원칙은 여당에 유리하게 정해져 있다. KBS의 경우 이사 11명 중 여당 추천 몫이 7명·야당 추천 몫이 4명이고, MBC는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 9명 중 6명을 여당이 추천한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이 집권여당의 ‘입맛’에 맞도록 편향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지난 2016년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당시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162명의 서명을 받아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이사장 포함 13인으로 구성하되, 여당이 7명·야당이 6명을 각각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또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 제청할 경우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하고, 일정 기간 후 이사회를 재구성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공영방송에서 야당의 지분을 늘리는 이같은 법안은 발의 당시 범진보 야권에서 폭넓게 지지받았으나,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 처리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박 의원의 방송법 개정안을 강하게 추진하는 데 반해 정작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은 법안 처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통합방송법도 과방위의 화두다. 여당은 기존 방송법이 공중파 방송만을 규율해 뉴미디어 시대의 변화에 뒤처졌다며, IPTV·케이블TV와 같은 유료방송,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OTT(인터넷 방송)와 1인 방송을 포괄할 수 있는 방송법 전부 개정안을 ‘통합 방송법’의 이름으로 발의했다. 급성장하고 있는 방송 산업의 육성과 규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큰 법안이다.

20대 국회 전반기 과방위는 두 법안의 처리를 두고 공전(空轉)을 거듭했다. 후반기에도 두 법안의 통과는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한국 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시대의 흐름상 통합방송법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여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없이 제시하는 통합방송법은 ‘정치적 물타기’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도 "당 차원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주요 의제로 다루는 만큼, 후반기에도 방송법 개정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은 OTT 규제 등을 민주당의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한국당이 여당이던 시절 더 강하게 주장하던 사안"이라며 "공영방송의 공공성 회복과 수익성 개선을 위한 집권여당의 고민들을 대안없이 비판하는 점이 아쉽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20대 후반기에 과방위의 난제들이 해결되리라는 예측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이슈는 여야 가리지 않고 올해 정기국회, 늦어도 내년 2월 국회에서는 해결하자는 공감대가 의원들 사이에 형성됐다"며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못한 전반기와 달리 구체적인 합의 처리 시점까지 정해졌다는 것은 큰 진전"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9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강규형 이사가 KBS 노조의 퇴진 구호를 들으며 이사회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 보편요금제·유료방송 합산규제·포털 규제 등 두고 ‘동상이몽’

방송·통신업계의 이목이 쏠린 보편요금제·유료방송 합산규제·포털 사이트 규제 등 각종 규제 정책의 도입·중단 여부 결정도 20대 후반기 과방위의 책무다.

보편요금제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통신사에 상관없이 월 2만원에 음성통화 200분·데이터 1GB(기가바이트)를 제공하는 이동통신 요금제를 뜻한다. 포털 사이트 규제는 ‘제2의 드루킹 사건’을 방지하고자 네이버·다음 등 주요 인터넷 포털 사업자들에게 부과하는 각종 사회·경제적 규제다. 일부 의원실에서는 웹사이트상의 혐오 표현 규제를 강화할 법안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특정 유료 방송 사업자가 케이블TV·위성방송·IPTV 등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제도다. 지난 6월 27일부로 규제의 일몰(종료) 기한이 지났지만, 일각에서는 시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합산규제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포털 사이트 규제는 여야 간의 대립선이 비교적 명확하다. 야당 관계자들은 "제2의 드루킹 사건이 재발해서는 안된다"며 "그동안 사실상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며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았던 대형 포털 사이트들을 법으로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에 반해 민주당 관계자는 "네이버나 다음 등 특정 포털 사이트를 규제한다고 온라인 여론 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야당이 개별기업에 한정하지 말고, 그보다 산업 차원에서 크게 봤으면 좋겠다"고 에둘러 규제 반대의 뜻을 밝혔다.

보편요금제나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의원마다 견해차가 커서, 당별로 통일된 당론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과방위의 한 관계자는 "보편요금제나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여야 모두 통일된 입장이 없어 소위에서 병합심사를 통해 합의되는 과정을 봐야 한다"며 "방송법부터 해결이 돼야 해당 논의가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편요금제는 부정적인 기류가 조금 더 강하다. 한 야당 관계자는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밀어붙이고 있으나, 시장에 이미 보편요금제보다도 저렴한 요금제가 나와 있어 정책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알뜰폰 보급 정책과 상충해, (보편요금제가) 알뜰폰 시장을 죽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지난 6월 7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연구원들이 슈퍼컴퓨터 5호기 파일럿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 과기정통부 주관 ‘4차산업혁명’ 추진, 원안위 脫원전 정책 등도 논의될 듯

과기정통부와 관련해서는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안건들이 과방위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기정통부가 4차산업혁명의 주무부서이기 때문이다. 야당측 한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주무부서가 과기정통부인데, 4차산업혁명위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20대 국회 후반기에는 이 부분들을 집중 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4차산업혁명의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한 논의들도 20대 후반기 과방위의 몫이다. 과방위의 한 관계자는 "5G 통신정책협의회나 망 중립성(통신망 제공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 문제를 두고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망 중립성과 관련해서는 해외사업자 차별 문제, 지난 2016년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망 비용을 부담하기로 한 상호접속 고시 개정 등이 주요 쟁점"이라고 말했다.

20조원에 이르는 R&D(연구개발) 예산을 통합 관리할 과학기술혁신본부(차관급)도 과방위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과방위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신설된 과기혁신본부에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며 "지난 14일 과기혁신본부가 발표한 ‘10대 핵심과제’도 내용이 모호해 막대한 R&D 예산을 제대로 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원안위는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와 연관돼 과방위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과방위의 한 관계자는 "원안위가 탈원전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편"이라고 했지만, 여당 측 관계자는 "탈원전 이슈 하나로도 (원안위가) 과방위의 정치적 대립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