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태우 기자]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경기를 직접 보지 않았다고 해도 기록지로 전체 경기 양상을 손쉽게 그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다. 또 야구는 그 기록과 숫자가 모인 통계의 스포츠이기도 하다. 이 방대한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구단의 경영 철학이 결정되고, 성적으로 이어진다. 빅데이터와 가장 밀접하게 연계된 프로스포츠라고 할 만하다.

미국에서 영화로도 제작돼 화제를 모은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머니볼’은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메이저리그에 널리 알린 대표적 사례다. 오클랜드는 빅마켓을 홈으로 삼는 타 구단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그런 오클랜드는 당시까지만 해도 타율이나 홈런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했던 ‘출루율’에 집중해 팀을 개편한다. 그 결과 2002년 정규시즌 103승을 거두는 등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머니볼이 의의를 갖는 것은 단순히 성적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간 단순한 보조 지표로 활용되던 빅데이터가 구단 의사결정의 전면으로 떠오르는 혁명적인 변화였다. 실제 출루율이 어느 순간 깜짝 등장한 지표는 아니었다. 모든 구단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머니볼’은 수집된 빅데이터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했고 이를 과감하게 경영 철학의 우선순위로 두며 대성공을 이뤄냈다. 빅데이터 활용의 대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두, 야구의 정의를 바꾸다

‘머니볼’이 타율이나 홈런보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출루율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세이버매트릭스’로 불리는 신개념 분석 기법의 덕이 크다. 세이버매트릭스는 야구에 게임 이론과 통계학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접목해 야구의 본질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론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대중화됐다. 타율 등 기존의 클래식 스탯을 넘어 다양한 해석 기법으로 기록에 대한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현재 KBO리그에서도 널리 쓰는 OPS(출루율+장타율)를 비롯, 최근 대중화되고 있는 wRC+(조정득점생산력), wOBA(가중출루율) 등이 모두 세이버매트릭스의 산물들이다. 예를 들어 타율은 단타와 장타를 구분하지 못하고 볼넷의 장점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그러나 wOBA는 각 타격 이벤트별로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해 선수의 타격 능력을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한다.

머니볼 이전의 메이저리그는 단순히 타율이 높고, 홈런과 타점을 더 많이 기록하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반대로 단타와 같은 효과인 볼넷을 많이 얻는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선수들은 몸값이 쌌다. 하지만 세이버매트릭스는 이런 선수들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수학적으로 명쾌하게 증명했다. 다른 구단이 주저하는 사이 이 믿음을 따른 오클랜드는 저평가된 선수들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머니볼 효과를 체감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제 모든 팀들이 프런트 조직에 통계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 비중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경영학과 통계학을 전공한 젊은 단장들이 리그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추신수(텍사스)와 같이 출루율이 높은 타자가 홈런 타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더 이상 선수 평가를 단순한 감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빅데이터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 스탯캐스트의 등장, 이제는 야구도 과학이다

과학의 발전은 야구를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도 이제는 가능하게 된 경우가 많다. 야구에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스탯캐스트’다. 스탯캐스트는 군사학에서 쓰이는 첨단 레이더 기술을 야구에 접목했다. 모든 선수들과 공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모두 추적된다. 각 구단들이 앞 다퉈 도입하기 시작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2015년부터 상당수의 자료를 일반에 공개하며 빅데이터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예전에는 선수 평가를 현장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탯캐스트를 대표로 하는 새로운 과학적 데이터 수집은 또 한 번 야구 환경을 바꾸고 있다. 타구 속도, 1루까지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 투수의 공 회전, 야수의 순간 반응 속도 등이 모두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이는 좀 더 정확한 선수 평가를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빅데이터가 미래를 예측하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러한 빅데이터의 발전은 선수들을 평가하는 툴에서 벗어나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빅데이터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영상과도 접목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정보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다. 오늘 경기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에도 언제든지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어쩌면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선택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KBO 리그에서도 빅데이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한다. 메이저리그에 비해서는 아직 조직이 크지 않지만, 각 구단마다 통계 전문가들을 고용해 현장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스탯캐스트 시스템과 유사한 추적 프로그램들을 활용하기도 하고, 수집된 빅데이터를 선수 훈련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야구가 데이터를 만드는 시대를 지나,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며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스포츠와 빅데이터의 유대는 더 끈끈해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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