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부산관광협회에서 발행한 팸플릿 ‘부산관광안내도’. 팸플릿 앞면에 범어사 조계문이 그려져 있고 위로는 온천장 마크, 아래로는 부산부청과 영도대교가 보인다. 왼쪽 아래 한복 입고 춤추는 여성은 온천장에 일하는 기생으로 추정된다. 부산이 대도시가 되던 시기 대표적 상징물들과 함께 팸플릿 뒷면엔 추천 관광 코스가 실려 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에 부산관광협회에서 발행한 팸플릿 '부산관광안내도'를 살펴본다. 파란 잉크와 빨간 잉크로 조악하게 인쇄한 손바닥만 한 여행 안내서다. 초라한 외관 때문인지, 일본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한국 돈 1만원 정도의 저렴한 값에 입수할 수 있었다.

팸플릿 앞면에는 현재 보물 1461호로 지정된 범어사 조계문이 그려져 있고, 문 오른쪽 위에 빨간색의 전형적 온천장 마크가 찍혀 있다. 팸플릿 안쪽에 실린 '부산 부근 명소 구적 약도'에도 동래온천장과 범어사가 세트로 그려져 있다. 조계문 아래에는 한복을 입고 춤추는 여성이 서 있는데, 아마도 온천장에서 일하는 기생을 나타내는 것 같다.

부산 동래온천장의 고바우 할아버지 석상. 한복에 실크햇 차림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성 오른쪽에는 요즘에도 관광지에 비치된 기념 스탬프 형식으로 '부청과 대교'라는 제목과 함께 부산부청과 영도대교가 찍혀 있다. 부산부청은 광복 후에 부산시청으로 쓰이다가 1998년에 시청이 옮겨가면서 철거되었다. 이 두 건축물과 함께 부산의 상징이었던 부산역 건물도 1953년 11월 27일의 부산역전 화재로 없어졌으니, 부산이 대도시로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갖추던 시기의 대표적 상징물 가운데 영도다리라도 남아준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참고로, 부산역전 화재의 이듬해인 1954년 12월 26일에는 근처의 용두산 신사 터에 자리한 피란민 거주지에서 화재가 나서, 이곳의 부산국악원 창고에 임시 보관되어 있던 조선 국왕 어진 상당수가 불에 타 사라졌다.

팸플릿 뒷면에는 용두산 신사, 자성대, 동래온천장, 부산대교, 송도해수욕장, 해운대온천장 사진과 관광 안내 지도, 추천 관광 코스가 실려 있다. 관광 코스는 세 가지를 제안했다. 1시간 코스는 부산역에서 중앙도매시장(자갈치시장)과 부산대교(영도대교)를 보고 용두산 신사를 거쳐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3시간 코스는 용두산 신사에서 부평정 시장(깡통 시장)을 들르는 것이다. 5시간 코스는 일단 3시간 코스를 끝내고 송도해수욕장과 부산역 앞의 경상남도 산업장려관, 옛 두모포 왜관 자리에 조성된 쇼와공원, 자성대를 들르는 것이다. 어느 코스든 부산역에 내려서 내륙으로 들어가려는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짠 짧은 여정이다.

이 팸플릿의 메인은 표지에도 그려진 동래온천장이다.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개통된 부산의 전차 노선 가운데, 이 팸플릿에서는 1927년에 온천장까지 연장된 노선만 표시하고 있다. 전차 종점인 동래온천장에는 한복 차림에 영국 신사 모자를 쓴 고바우 할아버지 석상이 세워졌다. 필자가 2006년에 고바우상을 찾아갔을 때에는 조선시대풍의 동래관광호텔 정문 옆에 비좁은 느낌으로 서 있었다.

고바우 할아버지 석상은 한반도가 맞이한 근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한복에 실크햇이 어울리지 않아서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앞서서 근대화를 시작해 제국이 된 나라들을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으로도 읽힌다. 이런 형상의 상징은 당시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니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고바우상을 당당하게 전면에 드러내면 좋겠다. 한반도 주민들은 이 고바우상처럼 주변 눈치 볼 여유도 없이 앞을 향해 달려와서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고바우상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한국의 경제 정치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니, 그 변한 수준만큼 세련되고 성숙한 모습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지금 눈으로 보기에 흉한 과거 모습을 감춰버리거나 과거에도 긍정할 부분이 있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을 있던 그대로 직시하는 데에서 성숙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