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익 휘이익."
휘파람 소리가 구슬프다. 해녀들이 거칠게 숨 고르는 소리, 일명 '숨비소리'다.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의 제주 바다 풍경. 22일은 제주도가 정한 '해녀의 날'이다. 제주 해녀는 유네스코가 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가 작업할 때 가져가는 동그란 테왁 두엇이 검푸른 바다에 동동 떠 있다. "지금부터 5m 깊이쯤 되는 물에 들어갈 거우다. 돌에 붙은 문어든, 흔한 미역 우뭇가사리든, 뭐라도 재주껏 캐옵서." 까만 고무 잠수복 입고 주홍색 테왁과 촘촘한 망사리를 손에 들고, 물에 뛰어들었다. 세 시간 물질 끝에 수확은 겨우 7㎝ 남짓 소라 하나. 소금기 먹은 목은 칼칼하고, 오른쪽 아래턱은 마비된 듯 당겨오고, 고막에 물이 차 왼쪽 귀가 먹먹하다. 터덜터덜 물가로 기어나왔다.
"숨을 그리 못 참아서 물질 어떵 하맨?"
'해녀 선생님'의 따끔한 일갈이 이어졌다. 제주 해녀는 산소마스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숨을 최소 1분은 참아야 한참 바닥까지 내려가 전복도 캐고 문어도 잡고 톳도 뜯을 수 있다. 오래 숨을 참다 보니 앞이 흐릿하고, 눈앞이 어지럽다. 떠오르려 발버둥 치다 보면 깜빡 정신을 잃기 일쑤. 뭍에 나오자 들숨 한 번이 새삼 달콤했다.
찬물에도 머리 밀어 넣던 과거
"새끼 셋 키워보겠다고 눈 오는디도 찬물에 머리를 막 밀어 넣었어. 그렇게 키운 자식, 동네서 첨으로 서울로 대학 보냈을 때 얼매나 울었다고."
해녀 이금순(83)씨의 물질 경력은 올해로 66년. 소녀 시절 물질을 시작해 한평생 물질로 생계를 꾸려왔다. 어릴 땐 물구덕에 물허벅을 지고 해안가 용천수를 나르는 씩씩한 아기 해녀였고, 젊었을 땐 백련도 구룡포로 원정 물질 나가던 한집안의 어엿한 가장이었다. 열아홉 스물 무렵 열두 발(20m)도 넘게 깊이 들어가 굵은 전복을 따오곤 했던 그는 이제 '콘택600' 없이 입수가 힘든 여든 언저리 '할망 해녀'가 되었다.
"죽을 뻔한 적도 많지. 깊은 바다에 들어갔는데 눈앞에 전복 다섯 개가 한꺼번에 보이는 거라. 욕심이 나는 게 한참 물숨을 먹으면서도 캐보겠다고 용을 쓰다가 정신을 잃언. 눈 떠보니 동료 해녀가 나를 업고 나왔더라고."
제주에는 해녀들 고유의 품앗이 문화가 있다. '수눌음'라는 이름의 이 문화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해보려는 억척같은 노력이었다. 목숨을 걸고 물질 나가는 해녀들은 공동체를 이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왔다.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수확물을 나누고, 아이들을 업어 키우고, 물질의 고됨을 위로하며 함께 버텨왔다.
하지만 최근엔 폐쇄적인 공동체 문화가 해녀 문화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해녀로 '신규 가입'하는 데는 일단 단위 수협의 조합원으로 가입해 평균 200만원의 출자금을 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각 어촌계별로 100만~300만원 가까이 되는 회비를 추가로 납부한다. 여기에 어촌계 총회의에서 만장일치 승낙까지 얻어야 '마을 공동 소유의 바다 밭'을 마음껏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제주도청 해녀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제주시·서귀포시에서는 신규 해녀 지망자에게 조합 가입비를 지원해주고 3년간 양성비를 보조해주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며 "도 차원에서도 제주 고유의 해녀 문화 보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옛날에는 해녀들을 천것이라고 무시했어. 원정 물질 나가면 육지 사람들이 '제주 가시나야, 얼마나 못 먹고 못살았으면 물질을 허냐'며 비웃었지. 그런데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니까 전 세계가 알아주잖어. 그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해녀 최경저(65)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평생 해온 업(業)인디, 평생을 무시받다가 이제사 그걸 알아주니까 그게 참 고맙지"하고 덧붙였다. 제주 해녀는 지난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등재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도내 해녀 숫자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 반농반어(半農半漁)로 감귤밭, 마늘밭을 일구거나 식당 등 관광업을 겸하면서 해녀들은 점점 물질을 접고 있다. 최전성기 1960년대 2만3000여 명에 달했던 해녀 수는 1970년 1만4000명까지 줄었다가 2010년대 들어 2013년 4507명, 2014년 4415명, 2014년 4377명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다. 2017년 말 집계한 도내 해녀 수는 3985명. 현재 각 어촌계에 남아 있는 해녀는 70, 80대 노령층이 대부분이다. 2017년 말 70대 이상 해녀는 총 2386명으로, 도내 전체 해녀 수의 절반을 넘는다.
어촌에 남은 '할망 해녀'들은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를 보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하도리 어촌계 해녀합창단은 최근 서울로, 일본으로 원정 공연을 시작했다. '이어도사나' 풍의 구전민요 대신 작곡가 양방언이 만든 뉴에이지풍 '新해녀가'로 연습한다. 가사는 해녀들의 삶을 채록한 그대로다. "어떤 사람 대대공실 좋은 집에 사는디, 우리 어멍 왜 날 낳아 날 적부터 이렇게도 고생을 시키난." 원망 서린 노랫말을 내뱉었다가 다시 옹골차게 주워담는다. "나는 소녀다. 나는 엄마다. 나는 바다다. 나는 해녀다." 처음엔 꽃 같은 소녀였고, 이영저영 물질하는 사이 엄마가 되고 할매가 되고…. 해녀의 자부심을 잠시나마 목격한다. 22일은 이 자부심의 한바탕 축제가 만개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