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로 만났을 땐 시아버지와 며느리였잖아요. 오래 같이했으니 눈빛만 봐도 척이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극장에서 내달 9일까지 공연되는 '장수상회' 무대 위에서 배우 신구(82)가 박정수(65)와 나란히 앉아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연극을 하는 것도, 무대 위에서 부부를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다. 신구는 까칠한 노신사 성칠 역. 성칠네 가게 장수상회 옆에 새로 연 꽃집 주인 금님 역을 맡은 박정수가 거들었다. "연기할 때 편하게 받쳐주시니까 마음이 편안해요."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슬쩍 웃는다.

무대 위 부부로 처음 만난 신구(오른쪽)와 박정수.

연극 '장수상회'는 박근형·윤여정이 연기한 2014년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부모 자식 간 정을 담은 추석 맞춤형 가족 연극이다. 신구와 이순재, 손숙과 박정수가 각각 성칠과 금님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박정수는 "연습하는 동안 연인의 애틋한 마음은 나이 먹어도 젊을 때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칠이 앓는 치매는 가족 보살핌 없인 힘든 병이거든요. 금님은 본인도 중병에 걸렸으면서 끝까지 남편을 위해 헌신하죠." 그는 "제가 워낙 미모가 완벽해서(웃음) 부잣집 사모님 역을 많이 했지만, 수더분하고 속 깊은 금님이 실제 나와 더 닮았다"고 말했다. 신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치매 걸린 성칠이와 비슷한 면이 많아요. 세련되지 못하고, 성질 급하고, '욱' 할 때도 있고. 하하."

신구는 무대 위에서 옛 노래 '나 하나의 사랑'도 부른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로 이어지는 가사다. "성칠은 개구쟁이 소년처럼 맨날 고약하게 굴어요. 그러다 처음 '평생 당신 곁에 있겠다' 고백한 날 갑자기 탈이 난 금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죠. '노래해주면 안 아플 것 같다'는데 별수 있나." 이 연극에서 첫손 꼽히는 애틋한 장면. 박정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아마 훨씬 오래전 어느 날 성칠이 금님에게 같은 노래를 불러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 연극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사진이 아니라 접착식 앨범에 꽂힌 빛바랜 사진 같다. 관객은 각자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향수(鄕愁)를 불러낼 것이다. "부부라면 서로를 다시 생각해보고,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돌아보게 될 거예요. 그런 훈훈한 무대를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