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간곡히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결혼이란 딱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겁니다. 두 번까진 할 필요 없을 수 있지만, 한 번 정도는 해봅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마음에 들었던 이성의 이름을 꼭 적어내 주세요."

7월 21일 토요일 오후 3시 일본 수도권 기타이바라키(北茨城)시의 한 관광호텔 홀. 시청과 상공회가 주최한 '관제(官製)' 맞선 파티의 하이라이트, 이성 찍기 순서가 한창이었다. 참가자들이 마음에 든 이성의 이름을 적어내면, 주최 측이 상대방 의사를 확인해 '라인' 아이디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라인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쓰는 SNS 서비스다.

"메신저 아이디라도 주고받으세요" - 지난 7월 일본 수도권 기타이바라키시에서 마흔 전후 미혼 남녀 43명이 시청과 상공회가 마련한 집단 맞선 파티에 나와 마음에 드는 짝을 찾고 있다.
한 번 볼까요, 친구 할까요, 편지 할까요 - 집단 맞선 파티 참가자에게 주최 측이 나눠준 카드. 맨 왼쪽 칸에는 자신의 참가 번호를, 오른쪽 세칸에는 각각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상대'(1지망) '친구 정도'(2지망) '메일 교환 정도'(3지망)의 번호를 적어낸다.

참가자들이 선뜻 빈칸을 채우지 못하자, 가토노 다다히로 상공회 사무국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장 결혼하라는 게 아닙니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오셨는데, 라인 아이디 하나 못 따가면 시간이 아깝잖아요. 새로운 이성과 메시지만 주고받아도 기분 전환이 됩니다!"

읍소와 격려를 오가는 장광설 끝에 참가자 전원이 종이를 제출했다. 총 16쌍이 서로 라인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가토노 국장이 "대성공"이라고 했다.

◇장기 불황이 양산한 '중년 독신층'

이바라키현은 2006년 현 예산을 투입해 '이바라키현 만남서포트센터'라는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 가입비 1만엔을 내면 3년간 현이 주최하는 단체 맞선 파티와 일대일 맞선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다. 민간 결혼정보회사의 10분의 1 가격이다.

이날 행사도 센터가 준비했다. 시청과 함께 두 달 전부터 '45세 미만 미혼 남녀 25명씩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행사 당일 남성 24명, 여성 19명이 모였다. 평균 연령이 각각 39세, 36세였다.

일본에선 이 또래를 '아라포 세대'라고 부른다. '어라운드 포티(around 40)'라는 영어를 줄인 말이다. 원래는 단순히 마흔 전후 남녀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난해 12월 NHK가 '아라포 크라이시스(아라포 세대의 위기)'라는 심층 취재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잃어버린 20년'(1993~2013년) 때 대학을 졸업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들은 '취업 빙하기'에 사회에 나와 아르바이트·비정규직을 전전했다. 아이다 가즈 센터 매니저가 "(이 세대는) 한창 결혼할 나이에 안정된 직업이 없어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취업난·집값에 치여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한국 '삼포세대'의 선배 격이다.

이렇듯 장기 불황을 거치며 두툼하게 형성된 중년 독신층이 일본 저출산의 큰 원인 중 하나다. 내각부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일본 남성 세 명에 한 명(35%), 여성 네 명에 한 명(24%)이 독신인 채 30대 후반이 되고, 그중 많은 이가 여전히 홀로인 채 쉰을 넘긴다. 지자체까지 결혼 중개업에 뛰어드는 게 그래서다.

◇노후는 더 막막하다

이날 참가자뿐 아니라 센터 남녀 회원 2500여 명 대부분이 아라포 세대였다. 40대 참가자 다카가와(가명)씨가 "1990년대 후반 이 지역에서 제일 좋다는 현립대학을 졸업했는데, 저도 친구들도 취업을 못했다"고 했다. 10년 이상 아르바이트만 한 친구도 있고, 파견 회사를 못 벗어난 친구도 있다. 그도 뒤늦게 취업해 정신없이 일했다. 문득 돌아보니 마흔이었다.

30대 여성 호소노(가명)씨도 "20대 초반, 세상이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경리 일을 하고 있다. 월급도 박하고 평생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서로 의지하며 늙어갈 수 있는 상대와 진짜 결혼하고 싶은데 사귀는 데까지 발전하질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아라포 위기가 '4070 문제'와 세트로 온다는 데 있다. 아라포 세대의 부모도 슬슬 노년에 접어든다. 40대 독신 자녀의 어깨에 70대 부모를 돌볼 책임이 추가로 얹힐 공산이 크다. 부모가 떠나면 더 막막해진다. 그땐 아라포 세대도 초로(初老)일 텐데 자식도, 연금도 없는 사람이 위 세대보다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