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 '성형외과 거리' 입구엔 성형외과 전문의 홍모(50)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4층짜리 건물 두 개 층과 그 뒷골목 건물 한 개 층을 쓰는 제법 큰 병원이다. 홍 원장도 과거 케이블 방송의 의료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였다.
그가 성형 시술 전후 환자 휴식 용도로 마련한 병원 침상 일부를 아예 '프로포폴 처방 전용'으로 바꾼 건 지난 4월 무렵이었다. 일명 '우유 주사'로 불리는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은 효과와 회복이 빨라 주로 내시경이나 성형수술을 할 때 전신마취 유도제로 쓰인다. 하지만 과다 투약에 따른 중독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2011년 2월 마약류로 지정돼 의료 목적에만 쓸 수 있도록 용도가 제한됐다. 홍 원장처럼 의료 목적과는 무관하게 프로포폴을 투약하는 건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한 건 돈 때문이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프로포폴을 포함한 의료용 마약의 투약 기록을 전산으로 관리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였다. 그러면서 프로포폴 암시장이 형성됐고,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도매가 2908원인 프로포폴 한 병(20mL)을 주사하는 데 50만원을 받았다. 172배를 부풀린 것이다. 내원객 한 명에게 한 번에 프로포폴 네댓 병을 연달아 놔 준 적도 많다고 한다. 적발되는 걸 피하기 위해 진료기록부에는 진료 사실을 허위로 적었다. 프로포폴 투약만을 원하는 '가짜 환자'들은 과거 그들과 안면이 있는 전직 병원 상담실장 등을 통해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환자를 모으기 위해 '영업'을 나가는 사람들에겐 병원 공금으로 고급 승용차를 빌려주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태권)는 16일 이 같은 혐의로 홍 원장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부터 약 80일 동안 가짜 환자 10명에게 247회에 걸쳐 프로포폴 1100병을 불법으로 판매한 혐의다. 검찰은 "이를 통해 올린 매출만 5억5000만원에 달한다"며 "그가 불법 투약한 프로포폴 2만1905mL는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된 2011년 이후 적발된 사례 중 가장 많은 것"이라고 했다. 홍 원장은 "돈을 벌기 위해 그랬다"며 검찰에서 혐의 대부분을 시인했다고 한다.
검찰에 적발된 이들 중에는 상습 투약 환자들도 있었다. 장모(32·무직)씨는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홍 원장의 성형외과 등에서 약 1만335mL(2억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투약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수도권 일대 대형 병원 여러 곳을 운영하는 집안의 아들로 알려졌다. 오래전부터 프로포폴 중독에 시달렸던 그는 이번 사건 조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한 차례 기각됐는데도 또 프로포폴에 손을 대다 결국 구속됐다.
홍 원장 병원에서 석 달 동안 프로포폴 주사 값으로 1억1500만원을 쓴 여성 유흥업소 종사자(31)도 있었다. 80일 동안 42차례 병원을 찾아 총 4595mL의 프로포폴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검찰은 이들 외에 홍 원장 병원에서 미용 시술을 받은 것처럼 속이고 프로포폴을 투약받은 7명을 적발해 불구속 기소하거나 약식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