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년 2월 각국 사제 대표들을 바티칸으로 소집한다. 세계 곳곳에서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의혹이 쏟아지는 가운데, 교황의 퇴위를 요구하는 대주교 성명까지 나오자 직접 상황 타개에 나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교황청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추기경 자문단과 사흘간 회동을 가졌다. 추기경 6명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가톨릭 교회를 뒤흔들고 있는 성학대 추문을 주요 의제로 교황과 해결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 9명의 자문단 중 3명은 아동 성학대 등 혐의로 피소돼 참석하지 못했다.
교황청은 12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년 2월 21~24일 각국 주교회의 대표 100여명을 불러 ‘소수자 보호’라는 주제를 놓고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회동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4일 미 가톨릭주교회(USCCB) 의장인 다니엘 디나르도 추기경과 미 보스턴 대교구장이자 교황청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의장인 션 오말리 추기경, 호세 고메스 로스앤젤레스 대주교와 신부 등과도 만난다.
교황과 미 사제 대표단의 이번 만남은 지난달 18일 디나르도 추기경의 면담 요청으로 이뤄졌다. 디나르도 추기경은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를 지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와 함께 ‘교황이 시어도어 매캐릭 전 워싱턴 대주교(추기경)의 아동 성학대 사건 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대한 전면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비가노 대주교는 지난달 26일 가톨릭 보수 매체들을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매캐릭 전 추기경의 아동 성학대 의혹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고 주장하며 교황의 퇴위를 촉구했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의혹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은 지난달 70년 간 300명의 성직자들이 아동 1000여명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교단이 이를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진술을 꺼리는 피해자 등을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는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봤다. 독일주교회는 이날 독일 주교 내 27개 교구에서 1946~2014년 3600명 이상의 아동이 사제들로부터 성학대를 당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칠레 검찰은 현재 아동 성학대 등 성추문에 연루된 사제 158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1960년 이후 아동 178명을 포함한 총 266명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필립 윌슨 호주 애들레이드 대교구 대주교는 지난 5월 아동 성학대 은폐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교황의 측근으로 교황청 재무원장을 맡았던 조지 펠 추기경도 아동 성학대 혐의로 호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가노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을 요구한 것과 관련, 가톨릭 교회 내 보수-진보 대결이 극한의 상황까지 치달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회 내부에서는 종종 암투가 있어왔지만, 고위 성직자가 공개적으로 교황의 퇴위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보수파는 이혼과 동성애 등 ‘성(性)’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립하고 있다. 보수파는 ‘재혼 부부나 동거 커플에게 영성체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교황은 ‘이들도 교회의 도움을 받아 신의 은총 아래 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첫해 동성애자 사제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보수파의 불만을 샀다. 보수파 신학자, 사제 등 62명은 지난해 8월 공개서한을 통해 "교황이 이단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파의 퇴위 요구에 "단 한마디도 않겠다"며 무대응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안팎에서는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문제에 대한 교황의 대응을 두고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만큼 이런 입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