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잡지회사에 다니는 바유 수르야씨는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봐 눈이 침침하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점심시간,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원격진료 앱(응용프로그램)’에 접속했다. 진료 과목을 입력하자 안과 전문의와 화상 연결이 됐다. 증상을 들으며 끄덕이던 의사는 "생리식염수를 사 안구에 수시로 투여하세요"라고 했다. 수르야씨는 그 즉시 앱에서 식염수를 회사로 배달시켰다. 그는 "짬을 내 병원에 가도 기다리다가 진료를 못 본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가만히 앉아 약까지 배달해주니 올해부턴 병원 가는 걸 포기하고 앱으로 의사를 찾는다"고 말했다.

의사가 부족해 간단한 진료에도 장시간 대기해야하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를 볼 수 있는 원격진료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네시아 의료체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전직 제약회사 대표가 개발한 의사 기반 진료 앱 ‘할로닥’은 나온 지 3년도 안 돼 사용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고 일본 닛케이 아시아리뷰가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의료 분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싱가포르 등의 동남아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이 성업 중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 여성 환자가 원격 의료 앱을 이용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하루에만 수천 건의 상담이 이뤄지는 할로닥에 등록된 의사 수는 2만명에 달한다. 진료비는 2만5000~7만5000루피아(약 1900~5700원)로, 병원 진료보다 저렴하다. 의사는 진료비에서 수수료 5~25%를 제한 금액을 받는다. 할로닥은 인도네시아 내 약국 1000여 곳과도 협업 계약을 맺어 사용자가 주문한 의약품을 배달까지 해준다. 서비스가 단순 진단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들의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원격진료 앱의 선풍적인 인기 뒤엔 의사가 현격히 부족해 간단한 진료조차 받기 힘든 동남아국가들의 열악한 의료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인도네시아 0.20명, 태국 0.47명에 불과하다.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 수요까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 등 주요 동남아 6개국의 의료 지출 비용은 올해 4200억달러(약 473억원)에서 2025년 7400억달러(약 834억원)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싱가포르의 원격 진료 앱 ‘어느 곳에나 있는 의사’에 한 환자가 접속해 “의사와 상담할 내용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자신의 증상을 입력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미비한 의료체제 덕에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원격진료 서비스를 누리는 측면도 있다. 이들 국가엔 신(新)산업 분야에 해당하는 원격의료 사업을 규제하는 명확한 법이 없기 때문에 앱이 상용화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앱은 의료 서비스 공급이 부족한 지역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정작 규제에 가로막혀 원격의료를 도입하지 못하는 국가가 많다.

한국 또한 섬·산간 오지 주민 등에 한해서만 원격의료를 허용한다. 동남아국가 중 의료법을 갖춘 싱가포르는 일정 기간 규제를 전면 철폐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원격의료 분야에 도입해 원격진료 앱 서비스를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