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춘 영화 ‘그리스’로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호주 출신의 가수 겸 배우 올리비아 뉴튼 존(69)이 9일(현지 시각) 세 번째 암 투병 과정을 고백하며 새로운 희망의 목소리를 전했다.
영국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호주에 정착했던 뉴튼 존은 외국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미국에서 그래미상을 무려 4번이나 수상한 가수다. 그는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992년 돌연 유방암으로 활동을 중단했으나 이후 재활 치료에 성공해 꾸준히 앨범을 내고 공연 활동을 했다. 그는 최근까지 무대에 서는 몇 안되는 60대 노장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그는 2000년과 2016년 내한 공연을 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그가 이날 과거 숨겨왔던 암 투병 과정과 마리화나를 이용한 치료방법을 공개했다. 그는 "언젠가 모든 호주의 암 환자들이 마리화나로 고통을 치료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언급하는 등 의료용 마리화나 허용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뉴튼 존은 1992년 첫 번째 암 투병 이후에도 암 치료 등 여러 건강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 호주 이민자 소녀, 영화 ‘그리스’로 월드스타 되다
1948년 영국 출생의 뉴튼 존은 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에 호주에 정착해 10대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과 끼, 수려한 외모를 갖췄던 그는 늘 세계적 스타의 삶을 동경했다. 뉴튼 존은 ‘배우 닮은꼴 찾기’ 등 여러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조금씩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계기는 1971년 밥 딜런이 만든 노래 ‘이프 낫 포 유(If Not For You)’가 큰 인기를 끌면서였다.
이후 ‘렛 미 비 데어(Let Me Be There)’로 제16회 그래미상 컨트리 & 웨스턴 부문 최우수 보컬리스트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I Honestly Love You’, ‘If You Love Me Let Me Know’ 등으로 무려 4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에는 외국인 출신 가수가 미국의 정통 음악인 컨트리 부문에서 수상하는 경우가 드물어 뉴튼 존의 수상을 경시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 뮤지션과 프로듀서들이 그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뉴튼 존이 세계적인 팝스타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은 영화 ‘그리스’가 엄청난 흥행을 일으키면서였다. 뉴튼 존이 당시 최고의 청춘 스타 존 트라볼타와 함께 출연했다. 1950년대 말 미국 고등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그려낸 영화 ‘그리스’는 당시 미국에서만 최고 흥행 수익을 기록하는 등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촬영 당시 29살이었던 뉴튼 존은 소녀 같은 외모로 고등학생 샌디 올슨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국민 첫사랑’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 영화로 음악적인 명성도 덤으로 얻었다. 그리스의 삽입곡들을 담은 앨범이 12주 연속 판매 1위를 차지했는데, 이 중에서 3곡이 뉴튼 존이 부른 노래였다. 특히 ‘Hopelessly Devoted to You’와 ‘Summer Nights’가 빌보드 차트 5위권 안에 오르면서 당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싱글곡 2개를 5위권 안에 진입시킨 여가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 유방암으로 좌절 후 ‘암 예방 대사’…다시 두 번의 암 투병
뉴튼 존은 이후 주연으로 출연한 뮤지컬 영화 ‘제너두(Xanadu)’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암 발병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44세이던 1992년 앨범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암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이 앨범은 1986년 뉴튼 존이 첫 아이를 출산한 뒤 발매한 음반 성적이 저조했던 상황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앨범이었다. 그는 절망감 속에서 모든 방송 활동과 공연 투어를 취소했다.
지독한 암 투병을 이겨낸 뉴튼 존은 유방암 치료 연구와 건강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유방암 자가진단 상품 ‘리브킷(Liv-Kit)’의 홍보대사로 나섰고, 호주에 ‘뉴튼 존 암센터’ 설립을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암 투병은 그의 음악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4년 여성으로서 시련을 견뎌낸 과정을 담아낸 앨범 ‘가이아’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그가 처음으로 모든 곡을 직접 만드는 등 작곡 및 작사가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선보인 앨범이었다.
1998년 암을 완치한 후 미국 내슈빌에서 제작한 앨범 ‘Back with a Heart’는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 9위에 오르는 등 뉴튼 존은 가수로서 자존심을 다시 회복했다. 이후 발매한 앨범들은 엄청난 흥행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뉴튼 존은 여전히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가수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2013년 교통사고로 병원을 찾았던 그는 과거 유방암이 오른쪽 어깨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나는 내 인생이니까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세 번째 암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이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유방암이 척추 아래쪽 천골(엉치뼈)쪽으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공연 투어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일정을 취소하기 위해 이 사실을 공개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9일 뉴튼 존이 뒤늦게 2013년 암 재발 사실을 공개한 것은 마리화나 암 치료 방법을 대중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호주를 오가며 지내고 있는 그는 암 투병으로 인한 통증을 가라앉혀주는 것으로 알려진 마리화나로 치료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의료용 마리화나 뿐 아니라 올해 1월부터 기호용 마리화나까지 합법화돼 있다. 그의 고향인 호주에서도 의료용 마리화나는 허용되고 있으나 아직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나는 그것(마리화나)이 합법인 (미국에서) 거주할 수 있어서 매우 행운이다"라며 "나의 꿈은 그것이 호주의 모든 암환자들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허용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두 번째 남편인 존 이스터링이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타바버라 농장에서 직접 재배 및 가공한 마리화나 오일로 암 투병으로 인한 통증을 견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 남편이 늘 곁에서 나를 돌봐주고 있다"며 "나는 암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나의 목표"라고 남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뉴튼 존은 1984년 영화 ‘제너두’ 촬영 중에 만난 동료 배우 맷 라탄지와 결혼해 두 사람 사이에 딸 클로에 로즈를 두고 있다. 이후 10년 뒤 라탄지와 이혼하고 2008년 사업가인 존 이스터링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