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홍콩에서 부동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여성 A(66)씨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러브스트럭’에서 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자신을 영국인 엔지니어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A씨와 만난 지 한달이 지나자 A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자신이 추진하는 엔지니어 프로젝트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이번 일만 넘기면 꼭 돈을 갚겠다면서 말이다.
남성에게 눈이 먼 A씨는 아무 의심 없이 돈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돈만 1억8000만홍콩달러(약 260억원)에 달했다. A씨는 이 막대한 금액을 2014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4년간 200여차례에 걸쳐 남성에게 송금했다. 남성은 A씨에게 홍콩·일본·독일 등에 있는 은행 계좌로 돈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A씨는 4년간 단 한 번도 이 남성을 ‘직접’ 만난적이 없었다.
돈을 챙긴 남성은 지난달 별안간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연락이 안되자 불안해진 A씨는 가족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 그제야 A씨는 남성에게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됐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직 경찰은 남성을 붙잡지 못했다.
A씨 사건은 지금까지 홍콩에서 신고된 ‘로맨스 스캠’ 피해 규모 중 최고다. 로맨스 스캠이란 연애나 혼인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신종 사기 수법이다. 이전까지 최고 피해 금액은 2640만홍콩달러(약 38억원)였다. 7일(현지 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홍콩에서 로맨스 스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홍콩에서는 최근 2개월간 로맨스 스캠 사건이 매일 한 건씩 신고됐다. 피해액은 수백만~수천만홍콩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272명이 로맨스 스캠에 당했으며 피해액은 총 1억3700만홍콩달러(약 196억원)였다.
홍콩 경찰은 로맨스 스캠 가해자들이 자신을 백인 사업가, 전문직, 군인 출신 등으로 소개한다고 SCMP에 전했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 등으로 피해자와 친분을 쌓으면 해외에서 급하게 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송금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쓴다고 한다. 피해자의 90%는 A씨처럼 여성이었다.
문제는 피해자 상당수가 이미 로맨스 스캠 수법을 매스컴에서 봤음에도 정작 자신이 사기를 당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홍콩 경찰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소셜미디어(SNS)에 개인 정보와 사진을 많이 올리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돈을 요구할 경우 "반드시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