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서울 광화문에 집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축하는 속도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몇 곱절은 더 빠를 테니 일찌감치 꿈 깨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눈만 마주쳐도 황홀경에 빠질 만큼 잘생긴 남자와 사귀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남이 나를 만나줄 리 없으니 다음 생에 절세미인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대망의 셋째는 멕시코에 있는 바다거북 부화장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다. 바다거북이 해변에 낳아놓은 알을 밀렵꾼들이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로 옮겨 부화를 도와야 그들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단다. 비행기 표만 사면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수 있으니 앞선 두 가지 일에 비해 실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게으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에게는 이마저도 요원한 일이다.

내년에는 갈 수 있겠지. 아니면 후년에라도 가면 되고. 사실 안 가도 그만이지, 뭐.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느 세월에 멕시코까지 가고 자빠졌담. 그렇게 바다거북과의 만남을 미루고 또 미루기를 벌써 수년째. 이런 내가 갑갑했는지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거북이가 먼저 뉴스를 전해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바다거북은 몹시 지쳐 보였다. 그의 작디작은 콧구멍에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깊숙이 박혀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호흡이 곤란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그걸 뽑아내려 할 때마다 바다거북은 짧은 다리를 파닥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새빨간 코피가 거북이의 매끈한 인중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악전고투 끝에 가느다란 막대가 쑥 빠져나왔다. "이게 뭐지? 오 마이 갓, 혹시 빨대야? 지저스! 이거 망할 플라스틱 빨대가 아니라고 누가 좀 말해줘!" 사람들은 경악했고 거북이는 한숨지었다.

죄책감이 해일처럼 들이닥쳤다. 취미라고는 카페에 가는 것밖에 없는, 그리하여 하루에도 석 잔씩 커피를 마시는, 그러는 동안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플라스틱 빨대를 소비했을 나다. 내가 무심코 버린 빨대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 거북이의 콧구멍에 콱 꽂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바다거북의 알을 훔치는 밀렵꾼만큼이나 치사하고 더러운 인간이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곧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맥주를 마실 때는 병나발을 잘도 불면서 커피를 마실 때는 굳이 빨대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모순된 행동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 이건 습관에 불과하다. 그것도 당장에 버려야만 하는 아주 막돼먹은 습관.

유일한 취미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오늘도 카페에 들르기는 들렀다. 하지만 어제와 달라진 건, 음료를 주문하면 으레 딸려 나오는 플라스틱 빨대를 직원 쪽으로 슬며시 밀어놓고는 유리잔에 담긴 커피만 받아왔다는 점이다. 빨대 없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자 시원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졌다. 나 비록 멕시코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 대한민국 땅에서 바다거북 한 마리를 구해냈노라!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뿌듯함이 차올랐다. 사람들은 거북이의 사정을 알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 빨대를 물기 위해 한껏 오므린 그들의 입이 그렇게도 옹졸해 보일 수 없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저 이기적인 주둥이 같으니라고. 못났다. 참 못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