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중국은 단 하나뿐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놓고 중국 정부와 국민의 외국 기업 길들이기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의 광대한 시장을 무기로 외국 기업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요하고 이를 어기는 기업엔 불매 위협을 일삼고 있다.

중국 정부는 대만·홍콩·마카오를 별도 국가로 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기업이 중국의 주권과 영토, 민족 정서를 존중하고 중국법을 지켜야 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특히 최근엔 대만을 개별 국가로 표기하는 기업이나 대만과 수교한 국가가 집중 타깃이 됐다. 대만 독립을 외치는 민주진보당 출신 차이잉원 총통이 2016년 집권한 후 중국의 압박이 더 거세졌다.

중국 국기(왼쪽)와 대만 국기.

◇ 中 "대만은 국가 아니다…‘중국, 대만’으로 표기하라"

중국은 대만을 표기할 때 중국에 속한 영토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대만이 한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대만(Taiwan)’이 아니라 ‘중국, 대만(Taiwan, China)’ 식으로 표기하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웨이보에는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에 중국과 대만이 별도 국가인 것처럼 표기돼 있다는 사진과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한 이용자가 올린 사진 속 냄비받침 제품엔 제품 정보가 중국, 대만, 대한민국, 필리핀 등 국가별 언어로 적혀 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스웨덴 가구 업체 이케아 매장.

중국 인터넷 이용자들은 ‘이케아는 중국에서 돈을 벌면서 왜 중국을 분리하냐’고 비난했다.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도 ‘이케아는 실수를 바로잡아라’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케아는 아직 중국의 요구대로 표기 방식을 바꿀 것이란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와 소비자의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케아 상하이 지점 대변인은 "회사가 제품 정보 표기를 바꿔야 하는지를 두고 내부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국 웨이보 사용자는 2018년 7월 13일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냄비받침 제품 정보에 대만(台湾·빨간 네모)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별도 국가로 표기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베이커리 카페 프랜차이즈 ‘85℃’는 중국과 대만 모두에서 불매운동에 시달리고 있다. 시작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85℃’ 매장에서 마신 커피 한잔이다. 차이 총통은 지난달 12일 중남미 순방길에 LA를 경유하면서 LA 매장에 들러 커피를 샀다. 이 모습이 담긴 사진이 SNS에서 퍼지자 중국인들은 ‘85℃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회사’라고 비난하며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회사 웹사이트도 해킹됐다.

‘85℃’는 대만, 중국, 미국, 홍콩 등 전 세계에 1000여개 매장이 있는데, 이 중 중국 매장이 회사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회사 측은 즉각 웹사이트에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대만에서 역풍을 맞았다. 대만 기업이 대만 독립을 부정한다며 대만 소비자 사이에 불매운동이 번진 것이다.

외국 항공사 40여곳은 대만·홍콩·마카오를 별도 국가로 표기해왔으나, 올해 4월 중국민용항공국의 ‘하나의 중국’ 준수 요구에 따라 세 지역을 ‘중국’ 카테고리 밑에 넣었다. 아시아나항공 등 한국 항공사도 중국 정부의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목적지 명칭에서 대만을 삭제해 중국 정부 요구를 따르면서도, 대만의 입장을 고려해 대만을 대만 통화인 신대만달러(NTD)로 표기했다. 중국은 위안화(CNY), 홍콩은 홍콩달러(HKD)로 표기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유나이티드항공에 감사를 표했으나 중국 정부는 반발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018년 8월 12일 대만 베이커리 카페 프랜차이즈 ‘85℃’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점에 들러 커피를 샀다. 이 모습을 찍은 사진이 SNS에 퍼지면서 중국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였다.

앞서 미국 호텔 매리어트, 스페인 의류업체 자라, 미국 의류업체 갭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대만 국가명 표기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중국 정부와 소비자의 협박에 밀려 이들은 줄줄이 사과했다.

대만도 대응에 나섰다. 대만 교통부는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표기한 외국 항공사의 이착륙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과 같은 불이익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대만 국민도 보복에 나섰다. 최근 대만 학생 5000여명은 영어능력시험 ‘토플’을 주관하는 미국 민간 교육 기관 ETS에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ETS가 중국 요구에 굴복해 수험자 국가 선택란에서 ‘대만’ 표기를 ‘대만, 중국’으로 바꾼 것에 대한 항의다. 이들은 "대만 표기 변경은 대만과 미국이 쌓아온 민주주의의 초석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토플 대신 영국 영어능력시험 ‘아이엘츠(IETLS)’로 갈아타겠다고 경고했다.

◇ 中 압박에 대만과 단교 잇따라…대만 수교국 17국으로 감소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 끝에 1949년 마오쩌둥(공산당)의 중국, 장제스(국민당)의 대만으로 분리된 후에도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헌법은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다"라고 명시했다. 대만을 중국 본토에 재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1992년 중국과 대만은 각자 국호를 쓰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는 ‘92공식’에 합의했다. 그러나 대만의 현 집권당인 민진당은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진당 출신 차이 총통이 2016년 집권하자 중국 정부는 군사·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 대만을 상대로 강경책을 펼치고 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6년 4월 26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중국과학기술대에서 류칭펑(오른쪽) 아이플라이테크 회장과 이야기 하고 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뿌리 깊은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대만과 수교한 국가들에 대만과 단교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다. 중미 엘살바도르가 지난달 21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의 수교국은 17국으로 줄었다. 차이 정권 출범 후에만 다섯 나라(파나마, 도미니카, 부르키나파소, 상투메 프린시페, 엘살바도르)가 대만과 단교했다. 태평양 섬나라 팔라우는 지난해 중국의 대만 단교 요구를 거부한 후 중국의 보복 조치 때문에 관광 산업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한 대만 젊은층 사이에서는 독립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대만 비영리 단체 ‘대만민주화재단’이 올 1월 대만인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중국과 대만이 분리된 국가라고 답했다.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합병하려 하면 저항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도 70%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