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프리카 54국 중 53국 정상을 한꺼번에 베이징으로 불러들인다. 3일부터 중·아프리카 협력 정상회의를 여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한 비판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가운데 단 한 나라를 뺀 모든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를 모았다. 그 한 나라는 아프리카 유일의 대만 수교국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랜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일 자 신문 2면에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과 연쇄 정상회담을 하면서 각 나라 정상들과 찍은 사진을 9장 실었다.

이보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달 31일 도쿄에서 아프리카 주요국의 전직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아프리카 현인(賢人)회의'를 출범시켰다. 아프리카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치열하게 견제해온 일본이 베이징을 향해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내년 이맘때는 아프리카 국가의 정상들을 모두 일본으로 불러 대규모 정상회의도 열 예정이다. '검은 대륙'을 가운데 두고 중·일이 총성 없는 외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토요일인 1일 가봉·모잠비크·가나·이집트 등 무려 11명의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과 연쇄 정상회담을 했다. 전날에는 소말리아 대통령 등 7명의 아프리카 정상을 만났다. 시 주석은 2일에도 5명의 정상과 회담을 했다. 중·아프리카 협력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무더기로 방중한 아프리카 정상들과 숨 돌릴 틈 없이 연쇄 회담을 가진 것이다. 인민일보 9월 1, 2일 자는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정상 사진들로 도배됐다.

중·아프리카 협력 정상회의는 2006년 베이징, 2015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커지는 중국의 파워에 비례해 참가국 숫자도 2006년 35국, 2015년 50국, 올해 53국으로 늘어났다. 아프리카 유일의 중국 비(非)수교국 에스와티니도 다음 회의 땐 초청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만과 단교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회의는 미국의 파상적인 무역 압박, 일대일로를 둘러싼 '신식민주의' '부채함정 외교' 논란으로 중국이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열린다. 중국은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나섰다. 시 주석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일대일로를 내세운 경제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시 주석은 3일 개막식 기조연설을 통해 일대일로와 대규모 경협을 통한 중국·아프리카 운명 공동체 건설, 그리고 미국을 겨냥한 '보호주의 반대'를 외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시 주석이 수십억달러의 대(對)아프리카 지원 계획을 발표하며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서구 열강의 텃밭이었던 아프리카가 이제 중국 일대일로의 파트너가 됐음을 선전하고 '세계의 지도자'로서 시 주석의 위상을 강조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아프리카 현직 지도자들이 속속 베이징으로 모여들던 지난 31일 전직 아프리카 정상들은 도쿄에 모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아프리카 현인회의' 창립 회의를 열고, 일본과 아프리카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는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일을 제쳐두고 달려온 것이다. 아프리카 현인회의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 총리와 모잠비크의 시사노 전 대통령이 공동 의장을 맡았다. 남아프리카·나이지리아·탄자니아·베냉의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일본은 내년 8월 아프리카 50여 개 국가의 정상이 집결하는 '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를 요코하마에서 개최한다. 중국·아프리카 협력 정상회의의 '일본판'인 셈이다. 일본은 1993년 TICAD를 창설한 뒤 꾸준히 규모를 키워왔다. 2016년 케냐에서 열린 TICAD 회의 때는 아베 총리가 3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한 해 전 남아공에서 열린 중·아프리카 협력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600억달러 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자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아프리카를 향한 중·일의 열띤 구애는 검은 대륙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과 개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아프리카는 원유·철광석·구리 등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중국 노동자 인건비의 20~30%면 고용할 수 있는 저임금 노동력의 천국이다. 저개발 상태의 아프리카가 본격적인 산업화와 도시화 단계로 진입할 경우 건설·물류·통신 분야 등에서 생겨날 인프라 개발 붐도 중·일이 국가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타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