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에서 쓰는 소방 호스는 유통기한이 6개월~1년으로 짧다. 강한 수압을 견디기 위해서다. 이러다 보니 일년 지나 사용할 수 없는 폐소방 호스가 소방서마다 매년 쌓인다. 업사이클링 벤처기업인 파이어마커스는 이런 폐소방 호스를 구매해, 백팩, 파우치 등 패션소품을 만든다. 소재 자체가 워낙 튼튼하다보니 방열, 방염 등 내구성이 뛰어나 해외에서까지 인기리에 팔린다.
또다른 친환경 기업인 젠니클로젯의 이젠니 대표는 버려지는 청바지를 재활용해 만든 가방으로 롯데백화점에 정식 매장까지 열었다. 가방을 만드는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 여러 아티스트들과 콜라보(협업)작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 위안부할머니와 협업해 만든 여성용 핸드백 ‘순백'은 한정 제작 물량이 온라인 판매 하루만에 완판됐다. 이젠니 대표는 "이 핸드백 소재는 유칼립투스 추출물로 만든 텐셀데님인데, 시간이 지나면 자연분해되는 재생섬유"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자동차시장길 49 번지에 자리한 서울새활용플라자에 가면, 자원의 단순 재활용이 아니라 원래 가치보다 업그레이드된 새 제품으로 둔갑시킨 친환경 성공사례들을 다수 볼 수 있다.
술병을 눌러 만든 갖가지 모양의 접시 제품들도 있고, 이곳 공방에서 우유팩으로 만든 지갑은 일년 동안 3만개나 판매됐다. 국산 우유팩으로 만든 여성용 지갑은 일본에 수출되고, 반대로 일본 우유팩으로 만든 손지갑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다.
새활용(Up-cycling)이란 단순 재활용을 넘어 쓰임이 다한 자원에 디자인을 더해 본래보다 더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서울시와 환경부가 공동출자해 만든 새활용복합문화공간으로 2017년 9월 5일 개관했다.
개관 일 주년을 맞아 9월 한달 동안 국제심포지엄, 새활용 자동차경주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 서울새활용플라자를 미리 찾았다.
서울새활용플라자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윤대영 센터장은 "소재 수급부터 제조, 판매, 교육까지 한 곳에서 ‘원스탑’으로 진행되는 복합업사이클링공간은 전 세계에서 이곳이 최초"라고 말했다.
유리병, 플라스틱, 목재 등 새활용플라자에 모이는 새활용 소재는 서울시민이 평소 재활용으로 내놓는 물품들은 아니다. 주로 회사나 단체에서 행사 후 버려지는 소재들을 기증받고 있다.
새활용플라자 지하1층에는 소재은행이 있다.이곳은 새활용 소재 공급자와 수요자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새활용플라자 콘텐츠기획팀 이진경 선임은 "기증받은 폐현수막 같은 각종 소재들을 분류, 보관해두었다가 원하는 수요자에게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이라고 말했다. 판매 전 소재의 가공 세척과정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지하1층 소재은행에서 한 층을 올라가면, 구매한 이들 소재들로 다양한 세 제품을 만드는 ‘꿈꾸는 공장'이 있다. 소재은행과 1층 작업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기자가 찾아간 시간에도 20여명의 방문객이 플라스틱 같은 재활용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1층 공장 옆에는 이곳에서 만든 새활용 제품 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이 선임은 "관람객의 반응이 좋은 제품들은 2층 상점에서 판매할 수 있으며, 3~4층의 공방들에는 현재 30여개의 새활용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어, 지속적으로 새활용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개관 초기부터 입주한 기업들은 벌써 뚜렷한 성과들을 쏟아내고 있다. 입주기업 글라스본은 유리병으로 접시 등 각종 제품을 5만개 제작, 판매했다. 하이싸이클은 커피 로스팅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삼베 소재인 커피원두 자루 10t 분량을 수거해 가방 등 제품 2만점을 만들었다
새활용플라자의 또다른 기능은 각종 체험 프로그램들이다. 방학, 학기 중으로 구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방학 중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들이 몰려 3층 카페, 5층 레스토랑이 문전성시다. 이곳, 카페와 식당, 사무실은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등을 일체 쓰지 않고 있다. 빨대도 플라스틱 대신 스테인레스로 만든 것을 제공한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주말에도 운영된다. 지하철역에서 다소 먼 것이 흠.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셔틀버스는 답십리역과 장한평역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다음은 새활용플라자 윤대영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일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나?
"월 평균 1만명, 연간으로는 12만명 정도가 관람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적어도 환경문제에 관한 한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새활용플라자 개관 취지, 일년 동안의 성과는?
"새활용플라자의 모토가 ‘새로운 생각, 새롭게 만드는 새활용플라자’이다. 서울시가 새활용플라자를 만든 것은 쓰레기 감축 때문이다. 일년간의 가장 큰 성과는 이곳을 방문한 시민들이 쓰레기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곳을 다녀간 부모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교육하고, 방문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쓰레기가 덜 배출되는 친환경 제품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점이다. 지난 4월 ‘쓰레기 대란’을 겪은 것도 자원 재순환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9월 한달 동안 열리는 개관 일주년 행사는 우리 스스로 다시한번 새활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이번 행사 중 어린이들이 즐길 행사들은?
"6일과 20일에는 편백나무를 이용해 인테리어 소품만들기 행사가 열리고, 15일에는 새활용자동차경주대회가 이곳 1층 꿈꾸는 공장에서 열린다. 페트병으로 만든 자동차를 낙차가 있는 레일 위를 달리게 해, 아이들이 중력, 공기저항력, 속도감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새활용플라자의 향후 지향점은?
"아직 새활용이란 용어가 다소 생소한데, 우리 플라자가 새활용시민아카데미 역할을 해서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새활용을 실천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또한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넓혀나갈 것이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을 비롯해 유수의 업사이클링 선진 단체들과 손잡고 의식주 분야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국내 중견기업, 대기업들도 이런 친환경 트렌드에 특화된 제품들을 많이 내놓도록 같이 협력할 예정이다."
-새활용이 쓰레기 문제 해결 대안인가?
"서울에서 하루 평균 4만2000t의 폐기물이 나온다. 이를 단순히 묻거나 태워서는 순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는 될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폐자원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가치를 더해 창조적인 제품을 만드는 ‘새활용(Up-cycling)’을 육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