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결항, 제주공항은 '멘붕'
식자재 공급마저 끊겨
전국서 888편(국내 818·국제 70) 결항
여름휴가 맞은 시민 발 동동

태풍 솔릭(SOULIK)이 강타한 제주는 모든 항공로·항로가 끊긴 ‘고립무원’ 상태다. 지난 22일부터 오후 6시부터 이날 현재까지 제주국제공항은 ‘전편 결항’. 하루 평균 458편이 오간 활주로는 휑하게 비어있었고, 공항에는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는 이용객들이 돗자리를 깔았다.

23일 제주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들이 모두 결항됐다.

◇전편 결항, 식자재도 끊긴 제주공항
제주공항 대기실 좌석은 빼곡했다. 우산도 소용없는 강우로 이용객들의 옷은 젖어 있었다. 권예신(24)씨는 서울에서 제주여행을 왔다가 섬에 갇힌 경우다. 권씨는 친구들과 함께 공항 바닥에 주저앉았다. "원래는 오후 1시 서울행(行) 비행기였는데 결항됐어요. 혹시나 비행기가 뜰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숙소도 정하지 못해서 막막하네요."

숙소 문제로 공항에서 ‘뻗치기’를 각오한 이용객들도 있었다. 손모(24)씨는 "렌터카도 반납했고, 이제 와서 숙소를 잡기도 어렵다"면서 "비행기가 다시 뜨면 순차적으로 탑승시킨다고 하니 그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공항에서는 현재 거의 모든 항공사의 제주발(發), 제주행(行) 비행기가 결항됐다. 제주공항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진에어는 오후 6시 이후 출발 항공편을 열어두고 있지만, 두 항공사도 곧 결항을 결정할 것 같다"고 전했다.

항공사 카운터는 표를 구하기 위한 승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곳곳에서 항의하는 듯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결항 안내문자를 보냈지만 확인하지 못하고 공항에서 문의하는 승객들이 많다"며 "제주가 태풍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해도 김포, 인천 등 육지 쪽 공항이 막힐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제주공항 관계자도 "어제(22일) 결항됐던 승객들이 나머지 티켓을 모두 구매해서 남은 좌석이 없다"고 전했다.

공항 운영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날 제주공항 국내선 4층 종합식당가는 식자재 공급이 끊겼다. 항구운항이 중단돼 식자재를 나를 화물선이 입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가 관계자는 "식자재가 없어 라면, 주먹밥, 김밥, 떡볶이를 못 팔고 있다"며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는 방법이 없을 거 같다"고 했다.

23일 제주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전편 결항된 가운데, 항공사 부스에 승객들이 몰려 항공 일정을 문의하고 있다.

"여름휴가 왔다가 섬에 갇혔다"
복귀해야 하는 직장인,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공항에서 발을 굴렀다. 가족들과 제주도를 찾은 김모(58)씨는 "저 같은 자영업자는 문을 하루 닫으면 곧바로 타격이 온다"면서 "오늘은 글렀고, 내일 비행기표를 일단 끊어놓기는 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초속 62m 강풍, 655mm에 이르는 물폭탄이 떨어진 제주도는 한때 마비상태가 왔다.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육상교통도 원활하지 못했다. 안전사고 문제로 폐쇄된 관광 명소도 있었다. 여름휴가로 제주를 찾은 신철진(36)씨는 "음식점이고 관광지고 다 문을 닫았는데 이게 무슨 여행이냐"며 "어제 묵었던 호텔로 돌아가 방이 있나 알아보려 하지만, 어차피 꼼짝없이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푸념했다.

◇인천국제공항도 영향, 결항편 점차 늘어날 듯
솔릭이 북진하면서 인천국제공항도 점차 영향을 받고 있다. 주로 20호 태풍 시마론(CIMARON) 영향권에 든 일본행 비행기가 도미노처럼 지연·결항됐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제주공항은 19호 태풍 솔릭, 인천공항 일본행 비행기는 20호 태풍 시마론 때문에 결항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 현재 인천공항에서는 모두 19편(출발 9편·도착 10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 향후 솔릭 진로에 따라 결항편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인천공항을 찾은 이용객들은 태풍 진로를 실시간으로 검색했다.

이날 뜨기로 했던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은 결항됐다. 직장인 장모(34)씨는 휴가를 하루 날렸다. "휴가를 이때 잡은 게 너무 후회된다"면서 "내일 오사카로 가는 비행 일정도 예상하기 어렵다고 해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23일 인천공항을 찾은 승객들이 항공기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과 도쿄여행을 계획했던 직장인 정모(26)씨는 비행기가 두 시간 지연됐다. 도쿄행 비행편은 솔릭·시마론의 움직임에 따라 결항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정씨는 "비행기가 못 뜰까 봐 노심초사"라면서 "태풍이 좀 더 느리게 와서 무사히 출국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으로 전국 공항에서 모두 1046편(국내선 963편·국제선 83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