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교구에서 수십 년 동안 300여명의 성직자들이 1000명 이상의 아동을 상습적으로 성 학대하고 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왔다는 내용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펜실베이니아주 조쉬 샤피로 검찰총장은 14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통해 대배심이 70여년에 걸친 기간 동안 벌어진 가톨릭 교구에서의 아동 성 학대 의혹을 조사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펜실베이니아 대배심은 지난 2년 동안 주내 6개 교구의 비밀 기록 보관소에서 총 50만건의 문서를 검토했고, 수십명의 피해자 증언을 확보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조쉬 샤피로 검찰총장이 2018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 가족 앞에서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 성 학대 의혹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대배심은 성직자들이 어린 소년, 소녀를 강간하고 수십년 동안 모든 것을 숨겨왔다고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성직자가 편도선 수술을 마친 어린 소녀를 병원에서 성폭행한 사례, 결박하고 가죽끈으로 채찍질한 사례, 17세 소녀를 임신시킨 후에도 아무 문제 없이 사역을 계속 이어간 사례 등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공소시효 문제로 보고서에 언급된 사례가 모두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해당 보고서에 언급된 사례 중 단 두 건만이 실제 소송으로 이어진 바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입법부는 그동안 아동 피해자가 30세가 되면 교회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금지한 법령을 폐지하라는 요구에 직면해왔다.

성 학대를 광범위하게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조직적인 은폐도 이뤄졌다. 샤피로 검찰총장은 “가톨릭 교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해자를 보호해왔다”며 “대배심이 조사한 결과대로 이는 피해자를 완전히 경멸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대배심은 혐의를 은폐했던 관계자가 여전히 남아 근무하고 있거나 심지어 승진했다고도 밝혔다.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교구 내 아동 성폭력 사건에 관한 대배심 보고서 표지

대배심 보고서는 그동안 교회가 ‘강간’ 대신 ‘부적절한 접촉’과 같은 단어를 사용해 사건을 축소하고,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성직자에게 동료 성직자의 사건을 조사하도록 맡기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관련 문제로 피의자 신분이 된 성직자가 직위를 잃은 이후에도 ‘병가 중’ 혹은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변명하며 교회 내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이날 발표 이후 피해자의 반응은 안도와 분노로 뒤섞였다. 뉴욕타임스는 한 피해자가 늦게나마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고 숨겨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에게 성 학대를 당하고 2010년 자살한 한 피해자의 형제 프란츠 샘버는 “대중이 알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정의는 어디에 있나요? 이 일을 위해 뭘 하고 있나요? 왜 가해자는 감옥에 있지 않나요?”라고 분노했다고도 전했다.

이번 보고서는 가톨릭교회의 아동 성 학대 문제에 관해 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조사에 따른 것이다. 성 학대 피해자는 호주에서 시행한 가톨릭 아동 성 학대 조사와 같이 전국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수 년 동안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호주 가톨릭계는 다양한 종교 및 시민 단체가 참여해 4년 동안 아동 성 학대 실태를 조사한 적 있다.

대배심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수가 이번 보고서에서 밝혀진 것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배심은 “우리는 이 명단이 전부인 것 같지는 않다”며 “그동안 많은 피해자가 나서지 않았고, 교구 자체에서도 고발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제대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