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전직 목수 로렌스 세디타(74)는 지난 6월 파산 신청을 했다. 1991년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이래 그는 장애 수당에 의지해 생활해 왔다. 하지만 2년 전 장애 수당 자격이 바뀌면서 세디타는 약값과 치과 비용 등 의료비 중 상당 부분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주요 수입원은 줄어든 반면, 의료비는 몇 년간 가파르게 상승했다. 파킨슨병까지 앓고 있는 그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몸 떨림을 막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약값이 70달러에서 1100달러로 치솟아 어쩔 수 없이 약을 끊어야만 했다. 암에 걸린 아내 치료비 때문에 카드 빚도 쌓였다. 그는 "빈곤이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여년간 미국에선 세디타처럼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다 파산 신청을 하는 노인들이 급증했다"고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2016년 미국에서 개인 파산을 신청한 65~74세 인구는 1000명당 3.6명이다. 1991년 1.2명에서 3배로 늘었다. 전체 파산에서 노인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1991년 65세 이상 인구의 개인 파산 비중은 2.1%였으나 2016년에는 12.2%로, 6배가 됐다.
노후 파산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에선 2014년 '노인들이 표류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고령자 빈곤 문제를 특집 보도한 이후, '노후 파산' 및 노후 파산으로 인해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한 노인들을 일컫는 '하류(下流) 노인'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일본의 '하류 노인' 현상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됐다. 모아둔 돈을 다 써버렸는데도 여생이 남은 노인들이 파산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판 하류 노인 증가는 복지 제도와 경제 구조 변화에 기인한 부분이 크다. 카이저 가족재단에 따르면, 지난 20여년 사이 정부가 짊어져야 할 사회안전망 비용이 대폭 개인 부담으로 넘어갔다. 2013년 기준 65세 이상 및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메디 케어'에서 중산층 수혜자의 본인 부담 비율은 41%였으나, 향후에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라고 카이저 가족재단은 전망했다. 그 결과 노후 자금이 적은 저소득층 노인들은 치료를 위해 모아둔 돈을 다 쓰고 빚더미에 앉는 상황에 직면했다.
과도한 주택담보대출 역시 노후 파산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도시문제연구소(Urban Institute)에 의하면, 개인 파산자의 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41%로, 1989년(21%)의 약 두 배로 급증했다. 안정된 직장을 믿고 20~30년 상환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제조업 쇠퇴와 경제난으로 인해 조기 퇴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올해 1월 파산 신청을 한 셰릴 맥러드(70)는 저축과 노인 보조 수당 등으로는 도저히 주택 대출을 갚을 수 없어 시급 8.75달러(약 9900원)를 받고 지적장애인 요양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 역시 고령 인구를 파산으로 모는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엔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취업 후 갚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청년층이 증가했다. 시애틀의 파산 전문 변호사 마크 스턴은 NYT에 "20~30년 전만 해도 자식의 학자금 대출 부담을 안고 있는 부모를 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자녀를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힘겨워하는 노년층 사례가 드물지 않다"면서 "부모 세대는 은퇴하면 소득이 없기 때문에 빚에 허덕이다 파산 절차를 밟는 수순으로 가곤 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로레스 일리노이대 법학과 교수는 "전체 노인 빈곤층 가운데 개인 파산을 신청한 노인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실제로는 빚에 허덕이는 노인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노년층은 파산 신청을 해도 새 삶을 위한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결국 노인들의 빚을 다른 누군가가 떠안아야 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