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미 동부 시각으로 7일 오전 0시 재개한다. 백악관의 구체적 제재 방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이란에서는 제재 영향에 대비한 금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5일(현지 시각) 익명을 요구한 미 재무부 한 관리는 오는 7일부터 미국의 대이란 스냅백(제재 복원)이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올해 5월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 후 이란의 핵위협 등에 대응한 조치로 대이란 제재를 다시 단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후 귀국길에 “미국은 (대이란)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며 “그것(제재)은 이란의 악의적 행동을 저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중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란 정부의 “거대한 변화”가 요구될 것이라며, 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과 뜻을 함께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적절한 합의가 이뤄지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아마도 그것은 이란 사람들이 선택할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란)의 변화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2단계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다. 7일 시행하는 1단계 제재를 통해 미국은 이란과 달러화, 금 등 귀금속, 석탄, 금속, 흑연, 자동차, 상용기 부품, 서비스, 산업 소프트웨어 등 거래를 중단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이란과 무역·금융 거래를 하는 제3국의 개인과 기관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도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1단계 제재를 시행한 후 90일 이후인 11월 5일부터는 2단계 제재가 시작된다. 미국은 2단계 제재로 이란과 원유·석유제품 거래 금지, 이란 중앙은행·금융기관과의 거래 금지, 이란 국영 선박 회사 등과 거래 금지 등 조치를 단행할 전망이다.

미국의 대규모 경제 제재 예고에 이란 국민들의 불안은 고조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5일 밤 이란 남부 도시 카제룬과 테헤란 서쪽 도시 카라즈 등에서 시위가 벌어져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카라즈에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은 시민 1명이 숨졌다.

물가 급등과 리알화 가치 하락에 대비한 ‘금 사재기’ 현상도 벌어졌다.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금위원회(WGC)를 인용, 올해 2분기 이란에서 금 수요는 지난해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15톤에 달했다. WSJ에 따르면, 이란은 명절이나 결혼식에서 금을 선물로 교환하기 때문에 금 수요가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 수요는 기존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이에 이란 중앙은행은 최근 60톤 이상의 금화를 추가 발행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금값도 급등했다. 현재 이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8.13g짜리 금화 ‘에마미’ 가격은 올해 1월보다 2배 넘게 상승했다. 지난주에는 사상 최고가인 4500만리알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란의 외환 거래 상인이 달러화 지폐와 리알화(왼쪽) 지폐를 들고 있다.

금융 시장도 요동쳤다. 이란 정부는 4월부터 ‘1달러당 4만2000리알’을 공식 환율로 고수하고 있지만, 지난 4일 이란의 리알화 환율은 1달러당 10만3000리알까지 치솟았다. 그만큼 리알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혼란의 상황 속에서 이란 정부는 신속히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이란 정부는 이날 비공식 환율로 외환 거래를 금지했던 규정을 일부 폐지하는 등 외환 관련 규정을 완화했다. 아울러 일반인의 달러 예금 계좌 개설을 독려하고, 이란으로 들어오는 통화와 금에 세금을 면제하는 방안도 시행하기로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 정부가 환율 정책을 발표한 후 리알화 환율은 1달러당 9만8500달러로 소폭 하락했다.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이와 관련, “(환율이 하락한 건) 미국 제재에 직면한 이란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당신들(미국)이 제재를 가했기에 우리는 경제를 개방한다. 이란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국민들은 왜 걱정하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