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의 패션 거물’ 안나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이 ‘무기한’으로 보그 편집장으로 남게 됐다. 최근 보그를 소유한 미디어 기업 콘데나스트의 실적 부진과 윈투어가 일부 편집에서 손을 떼는 모습 등으로 은퇴설이 제기됐으나, 콘데나스트가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국내에서 윈투어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배우 메릴 스트립이 맡은 패션지 편집장의 실존 인물로 잘 알려져있다. 30여 년간 미국판 보그 편집장 자리를 지켜온 그는 미디어 업계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패션 행사인 멧갈라를 총괄하는 등 패션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지난해 미 경제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선정된 윈투어는 트레이드 마크인 검정색 선글라스와 귀를 덮는 단발 스타일로 패션업계의 아이콘으로도 자리매김했다.
◇ 67세 패션 거물, 은퇴설 잠재우고 패션 왕국 ‘장기 집권’
1일(현지 시각) 보그, 베니티페어 등 미국 최대 잡지사인 콘데나스트의 CEO(최고경영자)인 밥 사우어버그는 트위터를 통해 “안나 윈투어는 우리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윈투어는 무기한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콘데나스트의 이 같은 발표는 최근 지속적으로 불거진 윈투어의 은퇴설을 부인하는 것이다. 윈투어의 은퇴설은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특히 올해 윈투어가 2018년 9월호 표지 모델인 팝가수 비욘세를 객원 편집장으로 임명하며 전례 없는 편집권을 부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은퇴설이 더욱 확산됐다. 보그에서 연간 발행되는 잡지 중 ‘셉템버 이슈(September Issue)’라고 불리는 9월호는 1년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편집장이 가장 공을 들여 발행한다.
또 최근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콘데나스트가 일부 잡지를 폐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윈투어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실제로 콘데나스트는 1일 ‘W’, ‘골프다이제스트(Golf Digest)’, ‘브라이즈(Brides)’ 등 3개 잡지를 폐간한다고 밝혔다.
◇ 아버지의 권유로 패션 저널리즘 뛰어들어…파격적인 시도로 보그의 위상 높여
영국 출생인 안나 윈투어는 잡지사 편집장인 아버지의 권유로 패션업계에 뛰어들었다.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패션에 관심을 갖게된 윈투어는 영국의 유명한 의상 부티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디자인보다는 패션 잡지 분야에 흥미를 느낀 윈투어는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 영국’에서 패션 에디터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보그와의 인연은 1985년 윈투어가 영국판 보그에서 편집장을 맡으며 시작됐다. 전임자 비아트릭스 밀러가 퇴임한 후 자리를 이어 받은 윈투어는 전례없는 과감한 혁신을 시도하며 ‘핵 윈투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그는 새로운 여성상의 독자를 타깃으로 삼고 싶어했다. 윈투어는 훗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업과 부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쇼핑할 시간은 없는, 그러나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갈망하는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잡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1988년 윈투어는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패션 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기존 패션 잡지와 다르게 패션 그 자체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윈투어는 잡지 커버 제작부터 기존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에는 유명한 모델의 얼굴이 커버를 장식했다면, 윈투어는 덜 유명한 모델을 섭외해 전신을 담은 사진을 커버로 내세웠다. 얼굴보다는 스타일이 돋보이도록 한 것이었다. 또 명품 브랜드 의류만 내세운다는 전통을 깨고 저렴한 기성복과 명품 브랜드 의류를 조합해 새로운 트렌드를 탄생시켰다.
◇ 패션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성장
지난해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는 윈투어를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1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이 명단에는 세계적인 팝가수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 작가 JK 롤링 유명 인사들이 포함됐다.
윈투어가 패션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보그 제작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손을 뻗어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 등 디자이너를 발굴해 스타 디자이너로 키운 장본인이다. 이전까지 디자이너가 주목받는 일은 드물었지만, 윈투어는 디자이너를 앞세워 이들이 업계에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는 미국의 최대 패션 행사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멧갈라’ 행사를 총괄하며 세계 패션 트렌드를 쥐락펴락 하고 있다. 행사에 초대할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정하고, 이들이 입을 패션과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을 결정한다. 이 행사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매년 수억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윈투어는 그의 개인 조수였던 로렌 바이스버거가 퇴사 후 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책은 냉담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윈투어를 인물화해 패션업계 현장을 현실감있게 그려내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이 윈투어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윈투어는 큰 주목을 받았다.
윈투어는 패션업계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공로로 인정받아 지난해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