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의 공모(collusion)가 범죄가 되는지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30일(현지 시각) CNN·폭스뉴스 등에 나와 내뱉은 말이 미국을 경악시켰다.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 측과 대선 개입에 공모한 사실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뮬러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을 정조준하며 수사하고 있는 사안을 그의 변호사가 자진해서 시인한 모양새다. 바로 전날까지도 트럼프는 트위터에 "공모는 없었다(No Collusion!)"고 했는데 줄리아니는 왜 그랬을까.

줄리아니의 논리는 '공모는 죄가 아니다'는 것이다. 여기엔 법적 근거가 있다. 연방 검사 출신인 그는 인터뷰 내내 '공모'를 'collusion'이라고 했다. 이는 '이익을 공유하는 여러 주체가 비밀리에 결탁·합의하는 행위'란 뜻으로, 불법적 모의·시도를 가리키는 형법상 범죄인 'conspiracy'보다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쓰인다. 어쩐 일인지 미 언론과 대중은 러시아-트럼프 간 모의 혐의를 그냥 'collusion'으로 지칭해왔다.

뮬러 특검은 지금까지 트럼프의 장남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을 해킹해 폭로하는 러시아의 계획을 사전에 알고 기뻐한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기관을 압박해 관련 사실들을 은폐토록 한 일 등을 밝혀냈다. 이는 'collusion'의 정황일 뿐이란 게 줄리아니의 주장이다.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의 민주당 해킹을 지원했는지, 러시아가 대가를 받았는지 등을 뜻하는 'conspiracy'의 차원에선 확보한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줄곧 "공모는 없었다"고만 했던 트럼프도 줄리아니 발언이 있은 뒤인 31일 트위터에 "collusion은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collusion이 없었기 때문에 중요하진 않다"고 했다. 줄리아니는 이날 의기양양하게 "러시아의 민주당 컴퓨터 해킹은 범죄였다. 트럼프가 해킹을 했나"라고 반문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했던 닉 애커먼 전 검사는 "뮬러 특검의 과제는 심증만 안기는 'collusion'이 아니라 범죄인 'conspiracy'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했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도 "우리가 아는 것만으로 트럼프를 기소하려다간 큰코다칠 것"이라며 "'왕을 치려면 아예 죽여야 한다(When you strike at a king, you must kill him)'는 미 사상가 랄프 에머슨의 격언을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최고권력자를 죽이지 못할 칼이라면 꺼내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