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왜 가셨습니까?"
24시간 위치통제 주눅, 그러나…
"결국 위치추적기?" 한계도 뚜렷
발찌를 새로 찼다. 발목에 너무 바싹 붙은 것 같다. 걸을 때마다, 발찌가 복숭아뼈를 긁어댔다. 두시간 만에 발목이 퉁퉁 부었다. 약국에서 4000원짜리 압박붕대를 사서 감았다. 서둘러 친구가 기다리는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발목에서 “부르르 부르르” 진동이 떨렸다. 곧바로 전화기가 울렸다. ‘02’로 시작되는 번호. 말투가 딱딱하다. “여기 관제센터인데요, 지금 위치추적기 안 가져오셨죠?” 위치추적기를 깜빡한 것이다.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집으로 향했다. 나는 발찌, 그것도 전자 발찌를 찼다.
‘전자발찌’ 제도는 용산 초등생 성폭행 살인사건을 계기로 2008년 9월부터 시행됐다. 재범(再犯)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 발목에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달아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올해로 제도 시행 10년 째.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기동팀 여기자 두 명이 사흘간 전자발찌를 착용해봤다. 여성의 시선으로 전자발찌의 허와 실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첫날 : 뭐지? 이 압박감은...
"이거 훼손하면 징역 7년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이에요. 자르려고 하면 바로 경보 울려서 출동합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보호관찰소 4층 회의실. 보호관찰소 직원이 손목시계 모양의 전자발찌를 기자의 발목에 채웠다. 겉만 보면 고무랑 플라스틱인데, 속에 철심이 들어가 있다. 뻣뻣하다.
“철심을 부수기 전에는 발찌를 벗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보호관찰소 직원은 전자발찌를 기자 발목에 최대한 압착시켰다. 압박감이 느껴졌다.
일단 한번 차고나니 하루종일 그곳에만 신경이 쏠렸다. 걸을 때마다 발목 아래가 덜렁거렸다. 전자발찌에 쓸리는 복숭아 뼈 부근이 특히 쓰라렸다. 물집이 잡힐 것 같았다. 닿는 부분에 압박붕대를 감았다. 회의에 늦어서 지하철역에서부터 회사까지 달려야 했다. 뛰면 발목에 찬 전자발찌가 드러날 것 같았다. 결국 속보(速步)로 걸었다. 결국 회의에는 지각했다.
전자발찌만 감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자발찌는 발에 차는 기기(발찌), 휴대용 위치추적기, 재택장치 3가지가 ‘한 세트’다. 이 가운데서 발찌·휴대용추적지는 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두 기기 사이가 5m 이상 떨어지면 곧바로 관제센터에 ‘탐지’된다. 위치신호가 잡히지 않은 것이다. 3분 이상 이 상태가 유지되면 관제센터에서 경고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보호관찰관이 ‘직접’ 붙잡으러 온다. 재택장치는 말 그대로 집에 설치해준다. 위치추적기, 재택기기는 모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가 장착돼 있고, 배터리로 유지된다. 외출했다 집에 들어가면 재택장치가 울린다.
회사에서 ‘아이템’ 회의를 하고 있는데 휴대용 위치추적기에서 “따르릉”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위치추적기는 휴대전화처럼 ‘진동모드’로 돌려 놓을 수도 없다. 벨소리를 바꿀 수도, 전원을 마음대로 끌 수도 없다. 전화기 기능까지 겸한 위치추적기를 받았다. 익숙한 관제센터 직원의 목소리. “위치추적기 충전 안하셨죠? 배터리가 다 된 걸로 나오네요. 충전하셔야죠.”
전자발찌 착용자는 위치추적기 배터리를 항상 50%~6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배터리 충전수치가 50% 이하가 되면 이렇게 전화를 걸어 주의를 준다. 착용자의 위치정보가 끊기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관제센터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배터리가 50% 아래인데도 충전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보호관찰관이 출동한다.
◇ 둘째 날: 난 죄가 없는데…주눅 들기 시작
전자 발찌를 착용한 뒤부터 한반도에 '폭염'이 찾아왔다. 하지만 치마나 반바지를 입을 수가 없었다. 발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더위에 긴바지를 골라 입고 다녔다. 신발도 전자발찌와 구분이 되지 않는 검은색이 끌렸다. 지하철역 같이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졌다. 범죄를 저질러서 발찌를 찬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위축되고 있었다. 실제, 관제센터는 실시간으로 기자의 동선(動線)을 감시하고 있었다.
기자는 전자발찌의 감시 시스템을 확인하기 위해 공항을 찾아가기로 했다. 해외 도주 우려가 있는 장소다. 전자발찌는 착용자 개개인의 죄질에 따라 접근금지 구역이 결정되는데, 중형(重刑)을 받은 전자발찌 착용자 대다수는 유치원, 학교, 공항, 항만 같은 장소에 발을 들일 수가 없다.
18일 서울 강서구의 김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입국 게이트가 보였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택시에서 내려 국제선 방향 출국장을 들어서자 위치추적기 전화벨이 울렸다. “관제센터입니다. 공항에는 왜 가셨습니다?” 통제센터 직원이 목소리가 여느때보다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취재차 왔습니다.” 왠지 주눅이 들었다. “무엇을 하고, 언제 돌아갈 것인지 말씀하세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는 그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 셋째 날: 이제는 '자기검열' 단계
외출 금지시간도 있다. 기자가 찬 전자발찌의 경우,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외출이 금지되게끔 설정되어 있었다. 전자발찌 체험을 하던 도중이 취재가 늦은 날이 있었다.다시 또 "따르릉." 관제센터였다. "밤이 많이 늦었는데, 집에 돌아가셔야죠. 언제쯤 도착하십니까? 시계바늘은 밤 11시 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택시가 안 잡혀서, 30분 안에는 무조건 집에 도착합니다." 깊은 밤에 목이 말라도, 집 앞 편의점에 갈 수도 없었다. 전자발찌 착용 이틀째, 기자는 '자기검열' 단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전자발찌 착용 사흘 째, 발목을 짓누르던 전자발찌를 벗을 수 있었다. 발목이 퉁퉁 부어있었다.
◇ "전자발찌는 결국 위치추적기?" 한계도 있었다
전자발찌가 만능은 아니다. 24시간 밤낮으로 전자발찌 착용자의 동선이 드러나지만, 역설적으로 그게 전부였다. 기자가 외출금지 명령을 어기고, 위치추적기를 두고 갔을 때도 관제센터에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만 할 뿐이었다. '작정한 범행'을 차단할 수는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2012년 ‘중곡동 주부살인 사건’을 일으킨 서진환(49)이 그랬다. 왼쪽 발목에 전자발찌가 채워진 상태에서 서진환은 부녀자를 성폭행하려고 덤볐다. 피해자가 저항하자 흉기로 찔러 살해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남편 박모(45)씨는 “전자발찌가 범인에겐 목욕탕 열쇠고리나 다름 없었다”고 절규했다.
전자발찌 착용자 동선 내에서 범행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위치만 확인하는 통제센터에서는 범행을 저질렀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해 강원도 원주시에서 A(35)씨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집 여성이었다. 범행 당시 관제센터에서는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던 A씨가 같은 건물 내에서 저지른 범행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전자발찌 착용자 현모(51)씨는 “잃어버렸다”는 거짓말로 관제센터를 속인 뒤 일본으로 도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위치확인 외에도, 범죄자의 신체·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기능을 전자발찌에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법무부는 새로 개발하는 전자발찌에 착용자 체온, 맥박, 알콜 농도 등의 생체정보 수집기능을 포함할 지 고심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전자발찌 착용자 생체정보가 파악된다면 상당수의 범죄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반면,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있어 쉽사리 진행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