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V에서 '단사리(斷捨離·끊고 버리고 떠남) 살림법'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세 가정의 '단사리' 사례였다. 한 40대 주부는 추억이 깃든 물건을 버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30대 주부는 시집올 때 친정할머니가 마련해준 이불 세트를 처리하기 위해 할머니를 설득해야만 했다. 50대 가정에선 꼼꼼한 인상을 가진 남편이 '단사리'에 소극적이더니 마침내 아내와 감정적인 충돌에 이르고 말았다.
이런 살림법은 동일본 대지진의 불가항력적 대재앙을 경험한 뒤 자본주의가 가져온 물질적 탐욕에 대한 반성이 일어난 것이 중요한 계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인생은 한 번뿐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인간의 문제란 거의 소유의 문제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 신념의 대립, 직장에서의 갑질, 국민 갈등이 모두 소유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소유하기 위해 다투고 고통을 겪는다. 소유한 다음에는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두려워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의 본질적 속성을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며 유한하여 무상하다고 했다. 이미 석가모니가 설파한 바이다. 우리가 이 무상함을 찰나찰나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면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무상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또 그 아름다움을 찬미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소유에 대한 탐욕과 집착으로 대립과 갈등 속에서 어두운 밤 지옥의 차가운 강을 헤엄치고 있다. 인간은 원래 모두 아름다운 존재였다. 주역에서도 인간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모든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했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것을 보면 좋아하고, 아름답게 꾸미려 하고, 아름답게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탐욕과 집착을 절제하고 소유를 바라본다면 그 소유는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