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권모(32)씨는 최근 소개팅에 나갔다가 상대방 여성에게 "한남콘을 살짝 닮으셨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한남콘'은 '한국 남성의 평균 얼굴'을 조롱하는 데 주로 쓰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 남성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볼과 턱에 살집이 있으며 눈이 작았다. 2대8 가르마를 하고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권씨는 "이 그림이 대한민국 남성을 싸잡아 비난할 때 쓰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돼 불쾌했다"고 했다.
'한남콘'은 2014년 3월 서울 마포구 한 안경점 대표 홍모(43)씨가 그린 그림이다. 얼굴이 큰 사람에게 어울리는 안경테를 추천해주려는 뜻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원래 그림 별명도 '안경남'이었다. 별다른 뜻 없이 그린 그림이 마구잡이로 퍼져나갈 줄은 홍씨도 몰랐다. 남자 손님들이 먼저 "재미있다"고 반응했던 게 시작이었다. 인터넷에 떠돌면서 남자들 사이에서 '내 주변에 저렇게 생긴 친구가 정말 많다' '나를 닮은 것 같다' 같은 반응을 얻었다.
뜻밖의 상황을 맞은 건 작년부터다. '워마드' '메갈리아' 같은 커뮤니티에 이 그림이 올라오면서 '한남콘(한국 남자 이모티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관련 커뮤니티를 드나드는 이들은 이 그림을 두고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저렇게 못생겼다'고 조롱했다. 그림에 수염이나 머리카락 등을 짓궂게 합성하기도 했다. 지난달 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경찰의 성차별 수사를 비판하는 여성 집회에서는 이 그림에 경찰 모자를 합성한 것이 피켓으로 등장했다.
'안경남'을 처음 그렸던 홍씨는 지난달 해당 그림을 '얼큰남(얼굴이 큰 남자)'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했다. 네티즌들의 무단 사용을 막기 위해서다. 홍씨는 "내가 만든 이미지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내가 그린 그림이 불특정 다수를 비난하는 데에 쓰이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