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H씨는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던 여성지 '샘이 깊은 물'에 '거실과 앉음 자세'라는 에세이를 발표한다. 한국인 특유의 좌식 문화를 다룬 그 글에서 H씨는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적 교육 시설과 사무 환경의 도입으로 공적 영역에서 '의자에 앉는 문화'가 꾸준히 확산되었지만, 사적 영역, 특히 주거 공간에서는 여전히 '방바닥에 앉는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보다 바닥에 앉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의자에 앉더라도 두 다리를 의자 위로 올려 개고 앉는 경우가 흔했고,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H씨는 이를 두고 '엉덩이의 귀소성'이라고 불렀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좌식 문화의 습속이었다.
1970년대 입식 문화를 탑재한 양옥의 보급도 이 엉덩이의 귀소성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를테면 양옥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안방에서 밥상을 받아 식사했고, 아랫목에 앉거나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안방극장'이라는 표현은 좌식 문화의 강력한 패권을 확인해주는 지표나 다름없었다.
더디게 진행되던 입식 문화로의 이행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서울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 덕분이었고, 응접 세트와 식탁 세트, 침대가 제각각 아파트의 거실, 주방, 안방으로 침투해 기존 가구들과 격전을 벌인 결과였다. 물론 이 가구들이 힘을 발휘하는 데는 아파트 난방 시스템도 한몫 거들었다.
아파트를 경유한 입식 문화의 확산은 실내의 사물 배치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좌식의 방 문화에서는 손에 닿는 거리 안에 일상 사물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에서 '상'은 거주자가 필요에 따라 자신이 앉은 자리 앞으로 사물을 옮겨 놓는 데 매우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반면 입식의 실내 공간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사물을 배치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의자나 소파에 앉았다가 곧바로 일어나 두세 걸음 이동한 후 다시 돌아오는 것이 용이했고, 따라서 앉은 자리와 약간 거리를 두고 사물을 배치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에 닿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사물을 배치하는 데 이전보다 좀 더 면밀하게 시각적 질서를 고려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질서를 조율하는 눈의 높이가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사물의 외형은 방바닥에 앉아 올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의자나 소파에 앉아 수평으로 응시하거나 바로 선 자세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균형을 맞춰야만 했다.
골동품 수집가로도 유명했던 H씨는 다른 글에서 전통 가구의 비례가 바닥에 앉은 자세의 눈높이를 고려해 제작되어 소파나 의자 같은 가구와 어울리기 쉽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입식 문화의 확산 때문에 엉덩이의 귀소성이 눈의 질서 지향성으로 대체되리라는 것을 알아챘을까? 한국의 현대적 디자인이 아파트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새로운 시선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