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너무 힘들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틀린 길은 아니겠지.' '아무 이유 없이 미래가 막막해지고 모든 일에 불안함이 생길 때. 걱정하지 말라는 한 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
여성 듀오 인디 뮤지션 옥상달빛의 대표곡 '수고했어 오늘도'의 유튜브 음원에는 20·30대의 고민과 불안이 담긴 댓글이 유난히 많다. 2011년 발표된 곡이지만, 지금도 위로가 필요한 수많은 청춘이 이 곡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힐링곡'이 된 덕에 옥상달빛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가사는 꽤 귀에 익숙할 듯하다.
최근 옥상달빛이 신곡 '청춘길일'과 '직업병'을 내놨다. '파아란 청춘이란 마치/ 눈부신 직사광선처럼 빛나도/ 그 뒤엔 짙은 그림자'(청춘길일) '아 아무도 듣지 않아/ 텅 빈 객석 앞에 오늘 밤도/ 아무도 없는 그곳에 앉아'(직업병)라는 가사에선 청춘의 푸름 대신 불안과 쓸쓸함이 짙게 배어 나온다. 12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속사 근처 카페에서 만난 옥상달빛 멤버 김윤주(34)와 박세진(34)은 "청춘이라고 해서 늘 좋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춘은 빛이 날수록 그에 비례해 어두운 면도 있는 시기라는 걸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경험이 이번 곡을 만드는 계기가 됐나요?
김 "'직업병'은 몇해 전 제가 제주도에서 본 어떤 뮤지션에 대한 기억을 담아 만든 곡이에요. 비 오는 날 조그만 공연장이었는데, 관객이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홀로 기타를 연주하더라고요. 노래든 연극이든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는 일은 사실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연주를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좋아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의 공연에도, 인생에도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곡에 담았어요."
박 "'청춘길일'은 사진작가 양승우의 동명 사진집에서 제목을 따왔어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조직 폭력배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 담겨 있는데, 특히 아이를 안은 남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눈길을 끌었죠. 밑바닥에 있더라도 순간순간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있는 시기가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님에게 허락을 구해 제목과 가사를 만들었어요."
―옥상달빛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박 "저희 노래가 실은 저희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드는 곡이어서가 아닐까 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힐링'을 염두에 두고 노래를 만들기보단 저희가 갖고 있던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려고 만들었어요. 그런데 앨범을 내고 나니 저희 노래를 듣고 치유가 된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듣는 이들이 '얘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느끼는 것 같아요."
김 "너무 각박한 시기잖아요. 누군가에게 '수고했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 건네기가 쉽지 않은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노래에 위안을 얻는 것 아닐까요."
김윤주와 박세진은 1984년생 동갑내기로 대학(동아예술방송대)에서 처음 만났다. 이름, 나이, 사는 곳. 딱 세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나와 잘 맞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이들은 잠깐 고민하더니 "우리 둘 다 '개그 코드'가 잘 맞는 걸 중시하는데, 말투를 듣고 바로 감이 왔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2010년 데뷔 EP 앨범 '옥탑라됴'를 냈고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옥상달빛'이 MBC 드라마 '파스타'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비롯해 20여 장의 앨범을 냈다. 만난 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만나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떤다.
―두 분이 어떤 방식으로 곡 작업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 "각자 평소에 일상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메모를 꾸준히 해 놔요. 가사는 이런 메모들을 바탕으로 하고요, 작곡은 마치 휴가 가듯 일정 기간에 몰아서 하는 편이에요. 5월 말 '청춘길일'을 시작으로 6월 말에 직업병을 냈고, 8월과 10월에도 신곡이 나올 예정인데, 이미 4월에 몰아서 작업해둔 곡들이에요.
―김윤주씨가 결혼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나요? (김윤주는 2014년 인디 밴드 '십센치'의 멤버 권정열과 결혼했다)
김 "그럼요! 그다지 큰 변화는 없어요. 정열이가 워낙 음악에 대해 열정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아지긴 했죠. 결혼으로 인해 제 음악 활동이 제약받는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어요. 뮤지션뿐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여성분들께도 결혼은 추천해요. 삶이 훨씬 풍성해지니까요."
―'옥상달빛의 노래는 힐링이다'고 규정되는 듯해요.
박 "물론 감사하지만 사실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어요. 한때는 힐링이라는 틀을 떨쳐버리고 싶어 2집에서 '괜찮습니다'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힘내요 잘될 거예요/ 그런 말 이젠 지겨워'라는 가사인데, 한 음료 CF에서 '힘내요 잘될 거예요' 부분만 갖다 쓰더라고요. 이제는 어느 정도 저희의 색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웃음)"
―닮고 싶다는 인디 후배들이 많아요.
박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만 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음악을 잘해도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나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꾸준히 한다면 분명히 결실이 있을 거예요."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김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하는 애들이죠. 워낙 꾸밀 줄 모르는 성격이라 음악을 힘들어하거나 서로 사이가 안 좋으면 노래나 공연에 티가 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지금 모습처럼만 보인다면 바랄 게 없어요."
박 "전적으로 동의(웃음)."
두 사람 얼굴에 동시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개그 코드 잘 맞는다는 두 친구는 웃음 타이밍도 꼭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