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 기자

"어디서 쌍팔년도 적 얘기를 하고 있어?"라고 누군가 지적한다면 필시 '구닥다리 옛날 스타일'이란 핀잔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없지만 사람들이 널리 쓰는 말 중 하나가 '쌍팔년도'다. 사람들은 대부분 '쌍팔년도'가 '서기 1988년'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1970년대 잠시 신흥 재벌로 떠올랐던 기업인 중 제세산업의 이창우씨가 있다. 그가 1981년에 내 베스트셀러가 됐던 회고록 '옛날 옛날 한옛날'(두레)을 보면 '쌍팔년도 국민학교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게 무슨 얘긴가? 책을 낸 1981년엔 '미래'였을 1988년이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에 등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와 비슷한 사례들 때문에 '쌍팔년도란 1988년보다 훨씬 이전'이라고 짐작한 일부에서는 '8×8=64이니 쌍팔년도는 1964년'이란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1946년생인 이씨가 1964년에 국민학생이었을 리 없다.

1955년 발행된 광복 10주년 기념우표의 소형 시트. ‘단기 4288년’이라고 쓰여 있다.

신상웅 단편소설 '음모'(1977)에도 '쌍팔년도'의 단서가 나온다. 소설 속 한 인물이 '쌍팔년도엔 한가락 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자유당한테 내리 낙선만 하셨겠군'이라고 받는다. 여기서 '쌍팔년도'란 자유당이 여당이던 제1공화국 시절, 즉 1950년대의 어느 해라는 걸 알 수 있다.

실마리는 연호(年號)에 있었다. 우리는 지금 서기(西紀)를 쓰지만 그건 5·16 다음해인 1962년부터였고, 그 이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연호는 '단군기원'의 준말인 단기(檀紀)였다. 조선 초 서거정의 '동국통감'에서 고조선 건국 연도로 계산한 기원전 2333년이 단기 1년이니 서기 1955년은 단기 4288년이 된다. 이것이 바로 '쌍팔년도'의 정체였던 것이다. 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65달러였던 최빈국 시절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쌍팔년도'는 한동안 잊혔다가 1988년을 지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1990년대 중반쯤부터 그 격한 발음과 함께 다시 부활한다. 이번엔 '서기 1988년'이란 뜻으로다. 아직 해외여행이 금지돼 있었고 휴대전화는 물론 컴퓨터를 가진 사람도 거의 없던 아날로그 시절의 향수가 그 위에 겹쳤다. 분명한 건 애초 이 단어가 품은 뜻이 88올림픽과는 무관했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1988년 서울올림픽 30주년이자 단기 435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