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카카오 '정준호의 카멜롯' 운영자

북한 스포츠 용어는 매스컴 단골 소재다. 농구 용어 '워킹 바이얼레이션'을 '걷기 위반'이라고 하는 건 이해되지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예술 헤엄'이라고 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북한을 넘어 대륙까지 육로가 열려 끊어진 말의 고리가 연결되면 좋겠다.

러시아나 중국을 여행할 때 고려인, 조선족 안내원을 종종 만난다. 남북한과는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3세·4세들이다. 러시아 가이드 김요한과는 가끔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고객 불만으로 해고당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혹여 북한 관련 소신 발언 때문인가 했더니 너무 열심히 안내하다가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란다. 내 친구답다.

그런 요한이 러시아 설화 '불봉황' 이야기를 들려줬다. '불새'로 알고 있던 길조(吉鳥)를 봉황이라고 하니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20세기 클래식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이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모음곡 '불새'다.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가 그를 찾아가 먼저 만화로 만들자고 제안했을 정도다. 만화는 두 사람 사후(死後)에 결실을 맺었다. 콘서트홀에선 '불새'가 점점 더 자주 연주된다.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퐁피두센터 앞 스트라빈스키 분수라고 한다. 루브르에서,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도 '불새'가 연주되는 모습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불새', 아니 '불봉황'은 우리 곁에도 항상 있었다. 대통령 연단이나 청와대 앞 분수를 장식한 바로 그 새다. 이제 불봉황의 길한 이야기와 그걸 전할 음악, 거기에 장단을 맞추는 춤만 있으면 스트라빈스키나 디즈니와 경쟁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 분수는 많은데 분수에 맞는 이야깃거리가 없다. 참, 내 친구 요한이는 관광 성수기에 다행히 복직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