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간 결승전이 열렸다. 프랑스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 후, 아쉬움의 눈물을 훔치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을 위로한 건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이었다.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키타로비치는 이날 크로아티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비록 크로아티아가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키타로비치 대통령은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폭우가 쏟아지는 경기장으로 내려가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 선수들을 한명씩 안아줬다.
◇ 크로아티아 외교 엘리트,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되다
키타로비치는 1968년 크로아티아 서부 도시 리예카에서 태어났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었다. 키타로비치는 자그레브대학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외교아카데미를 수료했다. 2000년엔 자그레브 대학에서 국제 관계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2~2003년에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을 다닌 뒤 하버드에서도 공부했다. 3년 전엔 자그레브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영국 ‘더 선’에 따르면, 키타로비치 대통령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는 크로아티아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하고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도 간단한 소통이 가능하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후 키타로비치는 자신의 전공과 능력을 살려 크로아티아 정치·외교계에 등장했다. 그는 1992년 크로아티아 과학기술부의 국제협력담당 자문직을 맡았고, 1993년 크로아티아 민주당(HDZ)에 입당했다. 이후엔 외무부 자문직을 거쳐 2008~2011년엔 주미국 크로아티아 대사, 2011~201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공공외교 담당 사무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키타로비치는 2015년, 46세의 나이로 크로아티아 4대 대통령이 됐다. 크로아티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것이다. 가디언 등 외신은 “키타로비치는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던 이전 지도자들과 달리 ‘세련되고 신선한’ 이미지로 크로아티아 정치계를 새롭게 재건했다”고 했다.
인구 400만명인 크로아티아는 국민 중 가톨릭 신자가 90%에 이른다. 키타로비치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취임 후 동성애, 낙태,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등을 지지했다.
키타로비치는 환경 문제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2017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후 변화는 대량 살상 무기와 같다”며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협약인 파리기후협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그는 유럽 국가들이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노선을 확실히 정하고, 모든 사회 영역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핵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등 목소리를 내왔다.
◇ ‘빗속 포옹’으로 진심 전해…러시아월드컵 스타로
키타로비치는 2018 러시아월드컵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앞서 열린 크로아티아와 덴마크의 16강전부터 자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아 주목을 받았다. 유니폼을 입고는 VIP 응원석에 앉을 수 없었기 때문에 키타로비치는 일반석에서 자국 축구 팬들과 함꼐 경기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타로비치는 지난 15일 열린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간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크로아티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그는 결승전을 앞두고 영상을 통해 “크로아티아의 자부심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에마뉘엘 프랑스 대통령도 마지막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나 이날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에 2대 4로 패해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선수들은 비 내리는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때 키타로비치가 경기장으로 내려와 선수들을 하나씩 안아주기 시작했다. 그는 쏟아지는 폭우를 개의치 않고 선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크로아티아 대표 선수 루카 모드리치가 월드컵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했을 때도 키타로비치는 시상대에 올라온 모드리치를 꼭 안아줬다.
키타로비치는 크로아티아 선수만이 아닌 프랑스 선수들까지 포옹하며 축하를 건넸다. 마크롱 대통령도 키타로비치와 함께 빗속에서 선수들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영국 ‘미러’는 “당시 푸틴 대통령만이 우산을 쓰고 있었다. 이는 비매너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키타로비치의 행동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키타로비치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크로아티아와 프랑스 선수들을 안아준 건 월드컵 최고의 장면이었고, 그는 세계인의 마음을 얻었다”며 “크로아티아는 졌지만, 매우 순수하고 따뜻한 모습이었다. 정치가 아닌 오직 스포츠였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크로아티아의 진짜 월드컵 스타는 관중석에 있던 대통령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