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걸어야 가장 넓은 땅을 얻을 수 있을까?" 고교 수학 미적분에서는 '도형의 둘레 길이가 같다면 원(圓)의 면적이 가장 크다'고 가르친다. 이걸 학생들에게 가르칠 땐 딱딱한 수학적 증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탐욕에 빠진 농부가 걷고 또 걷다가 목숨을 잃은 톨스토이의 소설을 활용하면 학생들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올해로 31년 경력 교사인 박성은(54) 경기 고양외고 수석교사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치료사'로 불린다. 그는 수학에 문학, 사회 이슈, 영화, 성경 일화 같은 다양한 소재의 외피를 입혀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선생님, 이거 배워서 어디 써먹어요'라고 묻는 과목은 수학뿐"이라며 "수포자에게 수학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수학이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학문'임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수업시간에 10년 전 "이러면 믿으시겠습니까"라며 단상에 올라 바지를 내리려 했던 나훈아 사진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나훈아는 옷을 벗어서 남자임을 증명하려고 했지. 그런데 옷을 벗지 않고 '남자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귀류법(간접 증명)을 가르치는 그의 수업 방식이다. 귀류법은 어떤 명제가 참임을 증명할 수 없을 때, 일단 그 명제가 거짓이라 가정하고 그 가정대로라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그는 "귀류법을 알면 옷을 안 벗고도 품위 있게 증명할 수 있는데, 귀류법을 모르면 옷을 벗어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면 학생이 단박에 호기심이 생긴다"고 했다. 실험해 보니 호기심의 효과는 정답률로 나타났다. 간접증명을 교과서적 개념으로 설명한 작년에는 정답을 맞힌 학생이 48%였지만, "올해 나훈아 사례를 들자 정답률이 88%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실생활과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이렇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좌표' 개념을 통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벡터'를 통해서는 지금 위치에서 어떤 방향으로 삶을 설정해 나갈지를 접목시키고, '부등식'에서는 서로 비교하는 인간 본성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교생 수포자가 6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지만 우리 학교에 수포자가 거의 없는 데는 이런 교수법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사도 처음부터 이런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도통 수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일단 '아이들을 깨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학과 인문학을 접목했다. "외고 학생들도 수포자가 뜻밖에 많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수학·영어 잘해야 한다고 외치는 기성세대 때문에 '수학은 딱딱한 문제 풀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야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박 교사는 그렇게 탄생시킨 교수법을 15년째 활용하고 있다. 박 교사는 현재 전국수학수석교사회 회장을 맡아 자신의 수업 사례를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올해 초에는 수업에 활용한 사례를 묶어 '수학 개념과 원리로 떠나는 생각여행' 책도 냈다. 그는 "매년 전국적으로 120회가량 연수하면서 수학교사 4000명에게 교수법을 전하고 있다"며 "연수 후 인문학적 수학 수업을 실천해보고 싶은 교사들에게는 강의안을 그대로 제공한다"고 했다.
그의 꿈은 '진짜 수포자'를 줄이는 것이다. 박 교사는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 아니라 '대학 가기 위한 수학만 하는 학생'이 진짜 수포자"라고 했다. "대입 수능 시험 과목에서 기하를 빼고 고교 수학 범위를 줄이면 수포자가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수학을 삶과 연결하고 인간관계를 수학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수업시간에 가르쳐야 합니다." 결국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져야 아이들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