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추민국 한남충 XX들 다 재기했으면.'

여성 회원 170만명이 가입해 있는 한 패션 정보 인터넷 카페에는 거의 매일 이런 표현이 올라온다. '남성 혐오'를 표방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라 화장품, 인테리어 등 여성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일상적으로 들어가는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소추민국(성기 크기가 작은 남자가 모여 있는 한국)' '한남충(한국 남자와 벌레를 결합한 말)' '재기하다(남성연대 대표였던 성재기씨처럼 자살하라는 뜻)' 같은 글 아래에는 '한남충 XX를 터뜨리고 싶다'는 댓글이 달린다.

여성 대상 범죄,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조롱과 풍자를 넘어 과격해지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똑같이 갚아주겠다"며 혐오스러운 단어로 남성을 공격한다. 본지와 인터뷰한 20~30대 여성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사회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원하다"는 반응과 "일부 남성들과 똑같이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여성 인터넷 공간을 장악한 남성 혐오

지난 6월 9일 열린 '2차 혜화역 여성집회'는 애초 여성 대상 몰래카메라 범죄를 근절해 달라는 요구로 시작됐다. 현장에서는 '유X무죄, 무X유죄'라는 구호가 나왔다. 남자라서 죄가 없고, 여자라서 죄가 있다는 뜻이다. 일부 여성들은 이날 행사를 '6·9 소추절'이라고 했다. 한국 남성의 평균 성기 길이가 6.9㎝라고 주장하며 남성들을 조롱했다. 여성들만 참석한 이 집회에서 일부는 환호했고 일부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에서만 쓰던 용어가 서울 한복판에서 집회 구호로 등장한 순간이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 등장한 수백개 여성 모임 가운데 일부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10여명의 여성이 윗옷을 벗었다. 이 여성들은 "여성의 가슴이 음란물이냐"며 항의했다. 이 집회를 연 단체는 앞서 생리혈이 묻은 속옷과 생리대를 걸어놓는 '월경 페스티벌', 겨드랑이털을 자랑하는 '천하제일겨털대회' 등의 행사도 주최했다. 이 단체 활동가 '검은'씨는 "예방주사"라고 했다. "남성이 싫어하는 금기(禁忌)를 건드려 그보다 '수위'가 낮은 여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한 여성 모임이 '여성소비총파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은 아무것도 사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그러자 5000명 넘는 여성이 '오늘 하루 돈을 안 썼다'며 카드 미사용 명세를 찍어 올렸다.

오는 28일 부산에서는 '레디컬 페미니스트(극단적 여성주의자) 체육대회'가 열린다. 주최 측은 '한남(한국남성) 다트 맞히기' 'XX 터트리기' 행사를 한다고 예고했다. 참가 신청을 고민 중이라는 한 여성(26)은 "우리를 모욕하는 남자들을 향해 똑같이 비웃어줄 수 있어서 통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언어적 폭력 '미러링'

젊은 여성들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평등을 외치는 '영(Young) 페미니즘'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과격한 언어가 널리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대표적인 예가 남성들이 쓰는 여성 혐오 표현을 똑같이 남성을 향해 쓰는 '미러링(mirroring)'이다. 거울처럼 똑같이 갚아준다는 뜻이다. '꽁치남(돈 안 쓰는 치졸한 남자)' '숨쉴한(한국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패야 한다)' 같은 표현은 흔하게 쓰인다. '워마드' 등 남성 혐오를 표방하는 여성 사이트에서 시작해 다른 여성 사이트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여성들은 "한남충은 김치녀에, 꽁치남은 된장녀에 대응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했다. 남성들이 온라인에서 '느금마(너희 엄마를 비하)'라는 표현을 쓰면 여성들이 '느개비(너희 아빠를 비하)'라고 대응하는 식이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기존에 온라인 공간에서 워낙 여성 혐오가 만연해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미러링이 발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 혐오 논란

자극적인 언어와 행동을 전면에 내세우는 여성 모임은 온라인을 통해 결집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만 인정한다. 진보적인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운동을 주도해온 기존 여성단체에 대해서도 "꿘(운동권)은 싫다"고 배척한다.

여성가족부는 6월 말 작성한 '혜화역 집회의 현상 분석과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강조는 이슈를 '생물학적 피해자 여성'과 '가해자 남성'으로 고착시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30 여성들이 현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다 보니 이런 지적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일부 여성의 남성 혐오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경북 구미 한 원룸에서 20대 아버지와 두 살 남자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여성들만 가입할 수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 기사 아래 '유충(어린 남자아이) 일찍 잘 죽었다'는 댓글이 달렸다. 작년 8월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 입은 군인을 '통구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안이환평등연구소' 안이환 대표는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