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영주권자 투표권 반대"
"의료보험도 제공말라" 봇물
反외국인 정서 확산에
"외국인 정책, 중장기적 계획 필요"
"외국인의 지방선거 참여를 당장 철회해 주세요!"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폐지를 청원합니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수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정부의 외국인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난민 유입의 발단이 됐던 무사증(무비자) 제도뿐만 아니라 외국인 건강보험·지방선거 참여·정착금 지원 등 기존의 외국인 정책도 모두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외국인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반대한다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예멘 난민 문제를 계기로 국내에서 반(反)외국인 정서가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반외국인 정서는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라면서 "외국인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외국인 정책 불만 쇄도… 복지 요청에는 "너희 나라로 떠나라" 비판도
6일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및 제안' 코너에서 추천순으로 살펴보면, 베스트글 10개 중 3개가 난민 수용과 외국인 정책에 대한 반대글이다. 이 가운데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을 청원한 글은 63만여 명의 동의를 얻어 추천순 1위를 기록했다. 2012년 제정된 난민법을 악용하는 외국인 때문에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엄격한 난민 심사 기준을 다시 세우거나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달 13일 올라온 이 청원에는 이날 오후 현재 63만 6000여명이 동의해 역대 최다 추천 청원으로 기록됐다. 기존 최다 추천 기록은 61만 5000여명이 동의했던 지난해 12월 '미성년자 성폭행범 조두순의 출소 반대' 청원이었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조두순 사건보다 난민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네티즌이 많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 지방선거 참여’는 실시된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예멘 난민 이슈가 불거지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한국 영주체류자격을 취득한 후 3년이 지난 만 19세 이상 외국인은 2005년부터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외국인 투표권을 보장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지난달 14일 올라온 ‘귀화가 아닌 3년 거주 외국인의 지방선거 참여 당장 철회해 주세요’라는 글은 6일 현재까지 10만명이 동의했다. 추천순으로는 현재 5위다. 글쓴이는 “귀화를 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다”라며 “3년 동안 한국에 머무르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건강보험 정책도 눈총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가입에 필요한 외국인의 국내 체류 기간이 3개월로 짧고 △소득·재산 파악이 어려워 상대적으로 외국인에게 건강보험료를 적게 부과한다는 논란이 일자, 지난달 최소 체류 기간을 6개월로 늘리고 건강보험료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청와대 국민청원엔 외국인 건강보험 혜택 기준을 체류 기간 6개월 이상이 아닌 영주권 취득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혜택을 요구할 거면 너희 나라로 떠나라"는 강경한 입장도 늘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에 산다고 밝힌 한 외국인 청원자가 지난달 21일 '외국인 아동도 혜택받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그는 "안산 쪽은 외국인이라도 어린이집 보육료 혜택이 있는데, 다른 지역은 혜택이 없다. 어린이집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보육료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글에는 "자국민도 애 키우기 힘들다. 당신네 나라에서 혜택받아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도 많은데 무슨 외국인까지 혜택을 주느냐" 등 반대 댓글이 쇄도했다. 이후 올라온 외국인 아동수당 반대 청원에는 찬성 청원(4044명)보다 1800명 많은 약 5800명이 동의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 목숨 걸고 막자" 주장도…전문가들 "외국인 정책, 중장기적 논의 필요"
난민 유입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2의 난민법인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기본법이다. 과거에는 동성애 문제를 두고 논란이 뜨거웠지만, 난민 문제까지 겹치면서 반대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12월 법무부가 발의한 뒤, 성적 지향(성소수자) 항목을 두고 격렬한 논쟁 끝에 폐기됐다. 이후에도 노회찬·최재성·권영길·최원식 의원(대표발의자) 등이 발의했지만, 17~19대 국회에서 모두 입법에 실패했다. 최근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려는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이 사실상 차별금지법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인종차별했다고 잡혀간다”이라며 “NAP를 막아야 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예멘 난민 문제를 계기로 난민·외국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급속하게 이뤄지면 제노포비아(이방인에 대한 혐오)가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구 동질성이 큰 나라일수록, 외국인 유입속도가 빨라지면 외국인 혐오가 커진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정권에서 한반도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국제 문제는 정책 방향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 오히려 국수주의가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정책은 사회적 기준과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예멘 문제로 급작스럽게 불거졌다"며 "우리나라의 미래 전망과 중장기 계획을 세워서 상황에 맞게 조정하고, 불필요한 차별이 확산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