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무성이 6일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쓰모토 지즈오·63) 옴진리교 교주의 사형을 집행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1990년대 초 일본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이 끝내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됐다. 사린가스 테러사건으로 아사하라를 비롯해 옴진리교 전 간부 등 13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사형이 집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옴진리교는 아사하라가 1984년 요가를 수행하는 도장(옴신선회)를 시부야에 개설하면서 출발한 신흥종교다. ‘일본의 왕이 돼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아사하라의 교의를 실행하기 위해 종말론적 신앙론을 펼친 옴진리교는 초능력과 요가 등을 앞세워 세력을 확대했다.

신비주의를 내세운 옴진리교가 과격화의 길을 걷게 된 건 1990년 아사하라 이하 25명이 총선에 떨어지고서부터다. 기존의 제도로 불가능하다면 살인을 통해서라도 체제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믿은 이들은 이후 독가스 살포, 살인 등 범죄를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옴진리교는 러시아와 관계를 구축, 재래식·생화학 무기를 구매·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진상이 밝혀진 1989년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도 옴진리교의 소행이었다.

옴진리교는 급기야 1994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사린가스 테러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사린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개발한 화학무기로, 호흡기·눈·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돼 수분 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8명이 죽고 140명이 넘게 다친 이 사건으로 경찰 당국은 옴진리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 다름아닌 옴진리교를 사기죄로 재판할 판사의 집 주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쯤, 도쿄 지하철역에서 사린가스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지하철 3개 노선과 5개 차량에서 13명의 시민이 숨지고 600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사건이었다. 일본 당국은 사건 직후 전면 수사에 착수해 옴진리교와 관련된 189명을 기소했다. 하야시 히쿠오 등 체포된 주범 4명은 “모든 게 교주님의 지시였다”고 털어놨다.

당시 일본 검찰청은 이들이 옴진리교 본부를 기습할 것이라는 경찰의 계획을 미리 알아내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도쿄 테러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아사하라는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야마나시현 가미구이시키에 있는 교단본부 내 밀실에서 체포됐다.

1996년 4월 시작된 아사하라 공판은, 2004년 2월 1심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7년 10개월이나 걸리면서 일본의 사법제도에 대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법원은 당시 아사하라에게 사린가스 테러 등 13개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아사하라 측은 판결에 항소할 뜻을 밝혔다. 간부의 증언만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사하라 측 변호인은 사형 집행 전까지 ‘제자들이 마음대로 행한 일이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하라 본인은 1998년 공판 이후 의미불명의 발언을 거듭하다가 이후 완전히 입을 닫았다.

옴진리교는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한 교단 간부 등이 줄줄이 체포되면서 거의 괴멸됐다. 도쿄지법이 1995년 10월 옴진리교에 대해 해산명령을 내린 것이 컸다. 그러나 옴진리교는 아직 존재하며, 현재 알레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