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티셔츠를 입은 남녀 10여명이 지난 2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4구에 있는 대형 수퍼마켓 체인 모노프리(Monoprix) 매장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식료품·주방용품을 비롯해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갖가지 생필품을 카트에 담더니 계산대를 통과하자마자 가위를 꺼내 들었다. 막 사들인 상품에서 과도하게 포장된 플라스틱이며, 비닐을 즉석에서 잘라냈다.

스페인서도… 벨기에서도… 프랑스서도… - 세계 시민들이 플라스틱을 공격하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스페인 마드리드, 같은 달 21일 벨기에 안트베르펜, 6월 2일 프랑스 파리(사진 왼쪽부터)의 수퍼마켓에서 시민들이 상품 포장재만 떼내 수퍼마켓에 두고 오는‘플라스틱 어택’행사를 열고 있다.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포장재를 없애도록 유통업체 측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플라스틱 제로(zero)'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든 채 포장재가 수북이 쌓인 쇼핑 카트 앞에서 사진을 찍은 이들은 곧바로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다. 그런 뒤 미리 준비해온 재생 가능 소재 가방에 포장재를 없애거나 줄인 물건을 담고 각자 흩어졌다.

"과도한 플라스틱 포장재 없애라"

과도한 플라스틱 포장재를 수퍼마켓에 그대로 두고 가는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날 파리뿐 아니라 독일·벨기에·스위스·캐나다 등의 세계 5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퍼포먼스가 이뤄졌다. 이 캠페인은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과도한 플라스틱 또는 비닐 포장재를 물품과 함께 구입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지구를 병들게 만든다는 점을 알리는 게 목적이다. 유통 업체에는 개선을 요구한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NGO(비영리 기구)가 기획한 게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돋보이는 운동"이라고 했다.

첫 번째 플라스틱 어택은 올 3월 영국 남부 소도시 케인샴의 대형 할인점 테스코 매장에서 벌어졌다. 소셜 미디어에 '포장재를 파괴하는' 사진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열띤 호응을 얻으며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는 세계 각지의 대형 마트에서 불필요한 포장재를 즉석에서 시원하게 떨어내 버리는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플라스틱 어택'이라는 이름으로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일부 유통 업체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첫 플라스틱 어택 장소로 지목된 영국의 테스코는 "2025년까지 100% 재활용되거나 생분해되는 재질의 봉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최대 유통업체 카르푸 역시 "상품 포장재가 100% 재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플라스틱 어택은 국내에도 상륙했다. 지난 2일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 마트에서 첫 '플라스틱 어택'이 이뤄졌다. 다음 달 1일엔 서울 서부권의 한 마트에서 다시 실시할 예정이다.

각국 정부도 플라스틱 사용 제동

150년 전 등장한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늘도 짙다. 매년 480만~1200만t이 넘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이 중 상당수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해 먹이사슬을 거쳐 결국 사람 몸으로 돌아온다.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각국 정부는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탈리아는 올 1월부터 수퍼마켓 안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싸는 청과용 얇은 비닐봉지에 대해서도 5센트(약 65원)를 물리도록 했다. 2015년부터 대형 마트에서 비닐봉지 값 5센트를 받도록 한 영국은 올해부터는 동네 수퍼마켓을 포함한 모든 소매 유통점에 이 제도를 확대 적용했다.

최근엔 플라스틱 빨대도 정부 차원에서 줄이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은 연간 85억개에 달하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올해 안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미국에서도 지난 5월 말 뉴욕 시의회가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나 금속 재질로 대체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는 업소에 100달러(약 10만8000원)의 벌금을 물리는 방안이다.

지난달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021년부터 면봉, 빨대, 식기, 커피 젓는 막대 등 10가지 제품을 만들 때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친환경적인 대체 물질을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8개 모든 회원국에서 동시 적용할 예정이다.

〈특별취재팀〉

박은호 차장, 채성진 기자, 김정훈 기자, 김충령 기자, 김효인 기자, 이동휘 기자, 손호영 기자, 허상우 기자, 이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