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년 전인 작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식에서 탈(脫)원전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년 12월 발표한 8차 전력 수급 계획에서 태양광·풍력에 100조원 투입,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2023~2029년 1차 수명 만료되는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 금지 등 충격적 결정을 내렸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15일 2022년까지 가동키로 했던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도 그 후속 조치였다. 장기 국가 에너지 계획을 짜는 민간 워킹그룹에선 원자력계 인사들이 배제됐고, 각종 원자력 기구의 위원·이사·감사 자리는 반(反)원전 활동가들로 채워졌다. 5년 정권이 에너지 백년대계를 바꿔버린 것이다.
깊은 검토 없는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전 가동률을 강제 하락시키면서 한전은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발전 단가가 가장 싼 원자력 전기(㎾h당 66원)를 마다하고 천연가스(125원), 풍력·태양광(163원) 전기를 돌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수원 부채는 1년 만에 2조8000억원 증가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에 따른 손실, 신규 원전 건설에 투입된 매몰 비용,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설비 투자비 포기 등 때문이다. 한수원은 정부에 손실 보전을 요구한다는데 결국 전부 국민 세금이다. 신규 원전 4기의 건설 포기로 날아간 일자리만 3만개에 달한다. 일자리 정부라면서 하고 있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원자력 전기 없이 향후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10년, 20년 내 휘발유·경유차를 퇴출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대체 운송 수단은 전기차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망에 따르면 현재 200만대인 세계 전기차가 2040년엔 2억8000만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전기차 가동 전력을 원자력 없이 풍력·태양광만 갖고 공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얘기다. 향후 수소차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더 많은 전기를 쓴다. 미래차로 주목받는 자율주행차도 수많은 센서와 고성능 카메라를 가동하려면 그만큼 전기 에너지가 추가로 든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도 막대한 추가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막대하면서도 질 높은 전력이 필요한데 자연조건의 제약을 받는 태양광·풍력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나. 그런데도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 수급 계획을 짜면서 이런 요인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원전 없이 미세 먼지는 어떻게 줄일 것이며, 온실가스 감축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정부는 2030년까지 태양광 설비 용량을 현재의 6배, 풍력 설비는 15배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광·풍력은 작은 규모일 때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국토 곳곳에 세워질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산을 깎아내고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현재도 환경 파괴로 곳곳에서 갈등인데 앞으로 태양광 6배, 풍력 15배로 늘면 국토가 어떻게 되겠는가.
또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 안보(安保) 문제다. 우리는 95% 이상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동에서 유조선으로 석유를 공급받는 데 45일 걸린다. 선박은 무력 공격에 극히 취약하다. 남북 관계뿐 아니라 인도양, 남중국해 등에서 심각한 국제 긴장 상황이 터질 때 안정적 석유 공급이 위협받을 수 있다. 석탄도 배로 운송된다. 반면 원전은 한번 연료를 채우면 1년 반 가동할 수 있다. 정 급하면 수송기로 우라늄 연료를 공급받을 수도 있다. 국제 관계가 늘 평탄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긴급 상황까지 감안한 에너지 공급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그런 인식이 없다. 국가의 기간인 원전을 적폐 청산 하듯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