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의 백미(白眉)는 '돌잡이'이다. 돈, 쌀, 실 등을 늘어놓고 아이가 어떤 걸 잡느냐에 온 가족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우리는 조만간 돌잡이보다 훨씬 정확하게 아이의 미래를 알려주는 보고서를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아이의 다 자란 외모와 지능지수는 물론 심장질환, 암,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 확률까지 적고 있다. 미국 'MIT 테크놀로지 리뷰'지가 '2018년을 바꿀 10대 혁신 기술' 중 하나로 꼽은 '유전자(DNA) 검사'가 만들어낼 모습이다. 유전자 검사가 갖는 미래 예측력의 비결은 사람 세포에 있는 23쌍의 염색체에 있다.

30만원을 내면 유전자 검사로 280가지 질병에 걸릴 확률을 알려주는 일본 도쿄대 벤처기업 '마이코드'.

염색체는 실패에 실이 감긴 것처럼 단백질에 DNA 가닥이 촘촘히 감겨 있는 형태다. 이 DNA 가닥은 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鹽基)로 구성된다. 생명체는 30억개에 이르는 염기 순서에 따라 인체의 모든 활동을 좌우하는 단백질을 합성한다. DNA를 '생명의 설계도'로 부르는 이유이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세포 속 유전자는 모두 같다.

유전자의 진가(眞價)는 2000년대 초반 유전자 전체를 해독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뒤 드러나기 시작했다. 13년간 38억달러(약 4조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 유전자의 기준이 되는 '표준 지도'가 만들어졌다. 개인 유전자를 이 표준 지도와 비교하면 어디가 얼마나 다른지, 어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어떤 유전자가 있으면 어떤 질병에 걸린다거나, 어떤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외모는 어떻다는 식의 유전자 특징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전하고 데이터가 쌓이면서 과학자와 의사들은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BRCA1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사람 중 상당수가 유방암에 걸리고, 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으면 폐암 환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식이다. 비만을 일으키는 유전자만 100종 넘게 알려져 있다. 아침형 인간이 되거나, 남들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도 특정 유전자의 힘이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는 30만명 이상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평균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안경을 낄 확률이 일반인보다 30% 높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머리가 좋아지는 유전자가 시력에는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 유전자 스타트업 '23앤드미'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면 '한국계 40%, 일본계 30%, 터키계 30%'라는 식으로 자신의 뿌리를 알려준다. 150만명이 넘는 사람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한 서비스이다.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얼굴형, 키와 몸무게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 데이터가 정확해지면서, 피나 침 한 방울만으로 사람의 외모를 완벽하게 그려내는 '유전자 몽타주'도 현실화되고 있다. 올 2월 영국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1903년 영국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의 유전자 검사로 1만년 전 영국 내 고대인의 모습을 재구성해 냈다.

유전자 검사를 맹신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영준 원자력의학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어도 생활습관 개선과 건강관리를 잘하면 담배·술을 즐기는 사람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했다. 타고난 유전자의 힘이 아무리 세더라도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