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는 新중년, 연애에도 적극적
헌팅부터 교차로 '애인구함' 광고까지
"일흔 넘어도 앞날 창창한데…"
신중년 연애에도 돈은 걸림돌

지난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호프집 ‘파고다타운’에서는 흥겨운 밴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일 오후였지만 50여 개 테이블 가운데 절반이 손님으로 채워진 상태. 대부분은 60대 이상이었다.

종업원들도 다소 ‘연배’가 있었다. “미스 최, 거기 아가씨들한테 이야기 좀 해 줘” “언니, 멋쟁이 오빠들 있으면 우리 부킹 좀 시켜줘요!”

종업원 최모(63)씨는 밀려드는 ‘부킹(즉석 만남)’ 요청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지금 이 정도는 약과예요. 주말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아주 정신이 없어요.” 한 무리의 즉석 만남을 성사시킨 최씨는 5000원의 ‘팁’을 받았다.

지난 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호프집 파고다타운은 ‘6070’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중년들의 즉석만남 공간인 이 곳은 주말에는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인기다.

‘신(新)중년’ 6070의 연애가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맘에 드는 이성을 ‘헌팅’하거나, 생활정보지 광고로 이상형을 찾는다. ‘인생의 황혼(黃昏)’이라 불리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서울·수도권 6070은 즉석만남으로 애인을 찾는 편이다. 지인으로부터 이성을 소개받거나(소개팅), 파고다타운 같은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점 찍는’ 식(부킹·헌팅)이다. 만남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에서는 생활정보지 광고로 애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6070 靑春, 교차로 '애인모집' 광고… 낙원상가 '헌팅' 나서기도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일대는 6070 신중년의 '핫 플레이스'다. 젊은이들이 홍대입구에서 이성과의 즉석만남을 즐기듯, 연애가 하고픈 신중년들은 낙원동으로 모여든다. 낙원상가 부근 호프집 '파고다 타운' '먹고 갈래 지고 갈래'는 신중년의 '홍대 클럽'인 셈이다. 이곳을 찾은 중장년층은 이성에게 직접 접근하기도 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은 동년배 종업원(주로 60대)에게 부킹을 부탁하기도 한다. 이들 호프집에서는 하루에만 10커플 이상의 만남이 성사된다고 한다. 임동수(78) '먹고 갈래 지고 갈래' 사장은 "아직 지방에서는 중장년층 연애를 삐딱하게 봐서 그런지 이렇게 놀만한 곳이 없다"며 "친구들과 함께 상경에서 우리 가게에서 부킹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남이 성사된 6070 커플들은 젊은이들과 다름없이 ‘맛집’에서 데이트한다. 근처 고궁을 걷거나 온양온천 같은 관광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생활정보지 교차로에 올라온 구혼 광고.

지방에서는 생활정보지로 원하는 이성을 찾는 경우가 흔하다. 생활정보지 ‘교차로’ 결혼코너는 이상형을 찾는 신중년의 구애(求愛)로 뜨겁다. 객관적으로 이성의 능력을 검증하는 ‘현실파’가 있는 반면 주관적인 이상형을 제시하는 ‘낭만파’도 존재한다. “재혼남(자녀 없음)이 여성 배우자 구합니다. 29세 때 만난 첫사랑 같은 아담한 여성 원함”이라는 광고는 ‘낭만파’다. 연애시간과 보수까지 적시한 현실적인 광고도 있다. “애인 겸 도우미 구합니다. 일당 5만원 드립니다. (연애시간은) 오전 10시~오후 3시, 월~금요일(주5일)”

유모(60)씨도 ‘교차로 광고’로 배우자를 찾고 있다. 생활정보지가 결혼정보업체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는 것이다. 유씨는 “결혼정보업체에 가입비 300만원을 내면 여성 10명을 만나게 해주던데 번번이 퇴짜 맞았다”며 “그럴 바에야 10만원에 다섯 번 광고 낼 수 있는 교차로가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 구함. 자영업. 키 173㎝. 몸무게 70㎏. 부산서 새롭게 인생을 열어 가실 분 모십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앞날 창창 新중년 "늙어서 연애는 돈이 더 중요"
'2017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황혼 재혼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65세 이상 남성의 황혼 재혼은 2016년 2568건으로 10년 전보다 47% 늘었다. 여성의 황혼 재혼도 2016년 1109건으로 같은 기간 121% 증가했다.

지모(79)씨는 배우자와 사별한 뒤 자녀 몰래 ‘비밀연애’를 하고 있다. 애인인 김모(72)씨도 남편과 사별한 비슷한 처지다. 사귄 지는 이제 100일이 조금 안 된다. 진씨는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귀다가 좋으면 재혼까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이찬우(72)씨는 “옛날에는 일흔 넘었으면 (재혼)안 하고 말았는데, 요즘 100세 시대라 앞으로 남은 날이 창창하지 않냐”면서 “내 나잇대도 혼자라면 적극적으로 좋은 사람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일 재혼정보회사 온리-유와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혼할 때 선호하는 배우자 조건으로 남성(25.7%)은 재산, 여성(26.1%)은 고정수입을 꼽았다.

사랑을 찾는 중장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이다. 재혼정보회사 온리-유와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혼할 때 선호하는 배우자 조건으로 남성(25.7%)은 재산, 여성(26.1%)은 고정수입을 꼽았다. 여성(74.4%)과 남성(53.1%) 모두 “상대의 경제력이 좋으면 성격은 다소 불만스러워도 괜찮다”고 답했다.

6070 가운데 일부는 ‘쾌적한 아파트 생활’ ‘넉넉한 연금’을 내세워 애인 모집에 나선다. 주변 중장년층의 만남을 주선한 경험이 있는 박모(65)씨 얘기다. “주변에 소개팅 할 거냐고 그러면 한 달에 용돈 얼마나 줄 수 있는지부터 묻는 여성들이 있어요. 지금까지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했는데, 늙어서까지 고생하기 싫다는 겁니다. 늙어서 연애는 (젊었을 때보다) 돈이 더 중요합니다.”

이해타산만 따진 ‘재혼’이 비극으로 끝나기도 한다. 지난 2월 생활정보지 광고로 재혼한 강모(55)씨는 용돈 문제로 말다툼하다 새 남편 신모(75)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연금을 받아서 이제는 좀 편하게 살려고 재혼했는데, 자꾸 무시하고 용돈도 올려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돈만 노리는 이성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재산이 없는 척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만 보겠다는 것이다. 이혼한 지 20년, 이제는 재혼 상대를 찾는 김모(70)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여생(餘生)을 보낼 전셋집, 예금 등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차로에 구혼 광고를 내니까 ‘당신 집 있느냐, 땅 있느냐, 연금은 얼마냐’부터 묻는 전화가 많이 옵니다. 사랑보다는 돈만 노리는 거 같아서 그런 사람에게는 일부러 셋방 산다고 거짓말합니다.”

신중년 커플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