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가지 음식만 먹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일하던 직장은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작은 분식집 한 곳을 제외하고는 근처에 식당이 없었다. 나는 점심때마다 분식집에 갔고 늘 비빔밥을 주문했다. 아침을 거르고 맞는 첫 끼라 그런지 분식보다 밥이 반가웠고, 허겁지겁 한 그릇을 다 비워도 속이 더부룩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비빔밥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비빔밥은 매일 먹어도 입에 물리지 않았다. '언제 물리나 한번 지켜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후에도 줄곧 비빔밥을 먹었다. 하지만 비빔밥에 싫증을 느낄 순간보다 이직을 해야 하는 시기가 먼저 왔기에 결국 나는 비빔밥과 끝(?)을 보지 못했다.
비빔밥이라고 하면 고추장과 참기름, 온갖 고명과 나물, 그리고 상추나 새싹 채소 같은 푸성귀들이 올라간 것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렇게 재료가 풍성하지 않더라도 무방하다. 흰 밥에 잘 익은 열무김치 하나만 넣어도, 혹은 다른 찬 없이 강된장으로만 비벼도 그것은 부족함 하나 없는 온전한 비빔밥이 된다.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갖고 있는 비빔밥을 먹는 일도 즐겁다. 산간지역의 산채비빔밥, 남쪽 해안가의 멍게나 성게비빔밥과, 육회가 올라가는 내륙의 비빔밥 등.
육회비빔밥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전주비빔밥이다. 육회도 육회지만 전주식 비빔밥의 백미는 콩나물이다. 아삭한 콩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콩나물국과 함께 먹는 것이 보통이다. 전주비빔밥과 늘 함께 거론되는 것이 경남 진주의 비빔밥이다. 소와 관련된 문화가 발달한 도시답게 진주비빔밥 역시 육회가 올라간다. 1884년 처음 들어섰다는 진주 중앙시장에는 진주 고유의 비빔밥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많다. 그중 제일식당은 진주 본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 비빔밥의 가장 큰 특징은 부드러움이다. 양념이 잘 배어들어 간 육회의 부드러움은 물론이고 한소끔 삶아낸 후 물기를 뺀 숙주, 무, 박, 배추, 고사리 등의 나물들이 잘게 다져져 올라간다. 이 덕에 맛이든 식감이든 어느 재료도 홀로 도드라지는 법이 없다. 국물로 내오는 순한 맛의 선짓국을 한두 숟가락 넣어 비벼도 좋겠다. 한데 비벼지고 섞이는 것의 즐거움. 비빔밥을 먹으며 함께 사는 인간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비빈다는 말은 으깬다는 것이 아니다. 비빌 때에는 누르거나 짓이겨서는 안 된다. 밥알의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주듯이 달래야 한다 어느 하나 다치지 않게 슬슬 들어 올려 떠받들어야 한다."(이대흠, '비빔밥')
제일식당
육회비빔밥(9000원), 해장국(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