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배모(40)씨는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 김모(37)씨와 만났다. 술에 취한 배씨는 김씨를 바래다주는 길에 강제로 입맞춤 했다. 당시 김씨는 배씨를 빨리 돌려보내기 위해 저항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때마침 김씨를 데리러 온 ‘새 남친(남자친구)’ 이모씨와 ‘전 남친’ 배씨가 맞닥뜨린 것. 시비 끝에 이씨가 배씨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김씨는 ‘전 남친’ 배씨에게 합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김씨는 “(폭행 이전에) 배씨가 억지로 입을 맞췄다”면서 강제추행으로 ‘맞고소’했다. 법정에 선 배씨. 상대방 저항이 없었던 ‘강제키스’는 죄가 될까. 대법원은 “유죄”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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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하급심(1심·2심)은 배씨가 ‘강제추행’ 하지 않았다고 봤다. “피해자가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았고, 딱히 항거하기 곤란한 상태도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씨가 고소하게 된 경위(폭행합의를 해주지 않자,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것)도 고려됐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27일 대법원은 무죄로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부산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강제로 키스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고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며 “(배씨의 강제키스가)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원칙적(법조문)으로 강제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이 있을 때 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피해자가 저항할 틈도 없이 이뤄지는 ‘도둑추행’도 강제추행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기습행위 자체에 폭행이 담겨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물리력을 행사했다면, 그 힘의 크기와 관계없이 폭행”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