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교보문고 방향 개찰구의 계단 절반이 길이 20m 현수막으로 덮였다. 영정을 뜻하는 검은색 띠가 둘린 현수막에는 '언제까지 장애인들이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어야 합니까'라고 쓰여 있었다.

이날 현수막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설치했다. 시위에 나선 단체 회원 10여명은 "모든 지하철 역에서 2022년까지 휠체어 리프트를 없애고 입구에서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직통 승강기를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공동대표인 박경석씨는 마이크를 잡고 "우리 때문에 출근길에 화 많이 나시겠지만요. 더 이상 휠체어 리프트 타다 죽기는 싫습니다"고 했다.

23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역 직통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는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에서 2022년까지 모든 역에 직통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직통 승강기 없는 27곳 중 11곳에만 승강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나머지 16개 역은 구조 문제와 설치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설치를 검토 중이다.

장애인들은 휠체어 리프트가 위험하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는 리프트를 타려고 직원 호출 버튼을 누르던 한모(69)씨가 계단에 굴러 떨어져 사망했다. 2009년 삼각지역에서는 리프트가 휠체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탈해 최모(87)씨가 왼쪽 안구를 잃었다. 리프트 와이어가 운행 도중 끊어져 사망한 경우도 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휠체어 리프트 중상·사망 사고는 9건이다.

광화문역은 내년에 직통 승강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시가 2015년 약속했던 것보다 3년이나 늦다. 이원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들이 광화문에 올 때면 직통 승강기 없는 광화문역 대신 1호선 시청역에 내려서 온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광화문역의 환기 시설과 좁은 보도 폭 때문에 승강기 설치 공간을 마련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활동가는 "우리가 오늘처럼 시위로 목소리 높이지 않으면 지하철 역 직통 승강기 설치는 계속 늦어질 것"이라면서 "시민의 관심을 얻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고 했다.